▲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오늘은 57주년 4·19 혁명 기념일. 1960년 3·1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고 대한민국 전 지역의 학생들이 중심세력으로 항거하면서 자유당 독재정권을 퇴진시킨 날. 이 땅의 학도들이 오랜 항거의 전통을 역사에 씨줄 날줄로 새겨 넣으며 수행했던 ‘위대한 임무’. 지난 3월 박근혜 파면 후 영화로 확인한 머나먼 이국 땅 학생투쟁사의 사례 하나. 나치 점령하의 네덜란드에서 유대인 구출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대학생 비밀조직 ‘틴에이지 아미’의 실화를 다룬 영화 <위대한 임무>. 4·19에 되새김질해 보는 이 시대의 위대한 임무.

1940년대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나치 점령하의 네덜란드 시내에서 시계공을 하던 코리 텐 붐은 자신의 집을 개조해 유대인들의 보호 거처를 만들고 대학생들로 이뤄진 조직을 구성한다. ‘틴에이지 아미’라 불렸던 이 비밀 결사체는 목숨 걸고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1천여명의 유대인들을 구해 ‘세계 속의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영화는 그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위대한 임무'라 명명한 것이다.

틴에이지 아미가 정의와 인권을 위해 싸웠듯이 수많은 대한민국 학생들과 국민이 지난 5개월 동안 촛불을 들고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저항사를 새로 썼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임무' 수행자들은 우주가 나서 도와주던, 혼이 비정상인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일제와 분단 그리고 독재시대에 치열하게 싸웠던 실존인물이 무수히 많은 이 땅의 역사. 분단과 전쟁, 냉전을 거치면서 묻혀 버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픈 역사. 그러한 엄동설한의 역사에서 모처럼 춘풍이 불었다.

박근혜 없는 봄을 맞았다. 이제 우리 역사는 적폐청산과 시대교체의 전환기를 보내고 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그렇다. 권리행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과거와 현실은 웅변해 왔다. 국민의 위대한 임무는 결정적 권리행사를 통해 새로운 체제 형성과 위임 권력의 창출을 승인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정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헌법적 현실이다. 고로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 이 진부한 사실을 망각하는 위임권력 행사자들과 장래의 행사예정자들에게 현실 권력의 파면과 교체를 통해 각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해냈다.

새로운 권력창출을 앞두고 대통령중심제의 권력지향 정치집단들은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국민의 지위가 이럴 때만큼 귀하게 여겨지는 때가 없다. 하지만 당선자가 발표되면 그때부터 주인공은 국민이 아니라 선출된 권력자에게 집중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겸손한 권력이 아닐 경우 더 큰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기회다. 세상의 변화를 위한 광장의 압박과 개입력이 독재의 시대를 지나며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의 호기를 놓치지 말기를. 과감하고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무위로 돌리지 말기를.

촛불과 국민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할 일이다.

1960년 4월19일과 2017년 3월10일은 오랜 세월을 관통하며 국민에게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4·19가 미완이었다면 3·10은 ‘위대한 임무’ 완성의 계기이자 평행이론 극복의 기회가 되기를….

그래서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은 미완의 4·19 혁명 기념일에 자문자답해야 한다. 위대한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광장의 촛불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미완의 역사적 숙제를 풀기 위해 어떤 결기와 목표를 가지고 싸워야 하는 것인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어둠의 시간을 벗겨 내고 새벽을 맞이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광장은 광장대로, 고공과 지상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전열을 유지한 상태에서 요구와 목표를 쟁취해 나가야 한다.

2017년 3·10을 쟁취해 낸 우리는 이후 역사도 실천적으로 써야 한다. 위대한 임무의 종결은 아직 멀었다. ‘적폐청산’으로 압축된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한 임무의 조기 종결 선언은 패배를 의미한다. 반동의 역풍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생애에 다시 안 올지도 모르는 역사의 시간을 광장과 투쟁의 힘으로 돌파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은 아직 빈손이다. 하여, 역사와 현실은 위대한 임무의 수행자들에게 지속적인 전진과 멋진 마무리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