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엄마, 아이스크림~”

“응. 이 리본만 매고 가자.”

조합원 총투표를 위한 출장 중에 마주한 광경이다. 경남 양산의 한 대형마트 앞에는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 분향소가 있다.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엄마는 웃음 지으며 말했다. “언니·오빠들에게 인사하고 가자.” 양산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는 세 번째 맞이하는 아픈 4월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의 공간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운다. 분향소에서 세월호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같은 것이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말기를’이라는 바람 아닐까.

대통령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어찌 됐든 선거는, 그것도 대통령선거는 우리의 미래를 표로써 결정하는 장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광장에 넘쳐 났던 희망의 담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직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정치공학과 ‘쟤가 되면 안 된다’는 네거티브만이 짧은 정치일정만큼이나 농축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잔인한 계절을 보내고 희망의 5월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분노와 좌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세월호는 분노의 기억 중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 3년은 폭력과 야만의 시간이었고 인내와 나눔의 시간이었다. 목숨을 건 단식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쌓아 놓고 게걸스레 먹던 짐승들과 “시체장사꾼” “유가족은 감정조절 장애자” “세금도둑”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던 언론·정치 모리배들의 폭력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세금도둑이라 발언한 자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다시 배지를 달았다!). 그들은 잊으라고 강요했지만 시민들은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 놓았다.

오직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마음으로 인내한 유가족 옆에 더 많은 시민들이 고통을 나누고자 노력했기에 지난 3년은 견딜 수 있던 시간이었다.

소환해야 할 분노의 기억들이 차고 넘친다. 파업을 강제 진압하러 들어온 공권력에 의해 극단적인 폭력을 당하고 후유증으로 자살까지 선택했던 노동자들과 버스만 보면 전경버스에서 아빠를 방패로 내리찍던 경찰의 모습이 떠올라 버스를 타지 못한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먼 옛날의 것이 아니다.

땅 위의 어느 곳에서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아 올라가야 했던 철탑과 옥상 위에서의 몸부림, 그 기억도 소환해야 한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노조위원장을 사무실에 감금하고 사무국장을 협박해 직인을 도용하는 공공기관의 작태도 우리는 또렷이 기억해야 한다.

옛날 내가 살던 동네에는 바보 형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해코지를 하고 놀려도, 그 형은 화를 내지 않고 웃었다. 물론 잘못은 그를 막 대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성을 내야 할 때 웃어넘기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바보 형은 탄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 변화의 시작은 바로 분노의 기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 당부. 내가 바라는 사회가 있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에게 표를 던지자. 더 이상 죽은 표(사표)는 없다. 우리의 미래마저 현실에 따라 재단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런 일이 여전히 반복된다면 장담컨대 내가 그리고 당신이 바라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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