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대웅 변호사(법률사무소 들풀)

대상판결 : 대법원 2017.2.3 선고 2016다255910 판결


1. 소제기의 경위

이 사건 원고는 2004년 7월7일 각종 건설공사의 감리업 등을 영위하는 피고 현대엔지니어링㈜에 입사해 이 사건 사용자가 수주한 각 건설공사의 감리업무를 이 사건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수행했다.

이 사건 근로자가 맡은 감리업무 자체는 시기와 종기가 정해져 있었으나 이 사건 사용자 사이에 작성된 근로계약서상 근로계약기간은 감리업무 기간과 별 상관없이 1년 단위였다(2005~2011년, 매년 7월7일 기준). 이후 2013년 9월30일까지는 계약이 3~4개월 단위로 갱신됐는데, 근로계약서는 사용자가 기본내용이 기재된 근로계약서를 제공하면 근로자가 그에 서명·날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2013년 10월1일~2014년 10월19일까지는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했는데, 근무하는 기간 중 맡고 있던 감리업무가 끝나고 다음 감리업무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재택근무를 해 왔다.

그런데 이 사건 사용자는 2014년 9월 말께부터 전에 없이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고, 이 사건 근로자는 그에 응하지 않았으나 재계약을 할 수 없다 해서 사직서·퇴직금수령 동의서 등 퇴직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근로기간을 1년으로 하는 근로계약서에 서명·날인한 후 계속 근무했다. 하지만 사용자는 근로자가 당시 맡고 있던 감리업무의 종료 예정일인 2015년 6월30일을 앞둔 같은해 5월 말께 원고에게 사직서 등 퇴직절차를 밟아야만 재입사할 수 있다고 했고 이 사건 근로자가 사직서 제출 등을 거부하자 근로계약기간 만료를 통보했다. 이에 이 사건 근로자는 각종 관련서류 등 퇴직절차를 밟고 2015년 8월 초께부터 재입사 형식(근로계약기간 1년)으로 다시 근무하게 됐으나, 향후 계속될 고용불안을 해소하고자 같은해 11월 이 사건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기간 만료 통보는 부당해고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2. 이 사건의 쟁점과 하급심들의 판단

이 사건 하급심(1·2심) 진행과정에서 주된 쟁점은 ① 이 사건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4조1항 단서 1호의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 해당되는지 여부 ② 이 사건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을 유효한 의사표시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위 쟁점들에 관해 이 사건 하급심들은 이 사건 근로자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 ① 사용자의 근로자 사용이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하기만 하면 기간제법 4조1항 단서 1호의 예외사유에 해당되므로, 이 사건 근로계약의 경우는 그에 해당된다. ②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이 이 사건 근로자가 진정으로 사직을 바라지는 않았더라도 이 사건 사용자의 강압이나 강박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어 유효한 의사표시로 봐야 한다는 이유다

3. 대상 판결의 요지와 의의

① 대상판결은 기간제법 4조1항 단서 1호의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란 ‘객관적으로 일정 기간 후 종료될 것이 명백한 사업 또는 특정한 업무에 관해 그 사업 또는 업무가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까지로 계약기간을 정한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했다. 즉 위 예외적 경우에 해당되려면 첫째 사업 또는 특정업무가 일정기간 후 종료 될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해야 하고, 둘째 사업 또는 특정업무의 종료시점까지 근로계약기간을 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판시에 따르면 사업이나 특정업무의 내용과 성질 등에 비추어 사업 또는 특정업무의 종료시점을 임의로 설정한 경우, 사업 또는 특정 업무의 종료시점이 누가 봐도 분명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사업 또는 특정업무의 종료시점까지 근로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 등은 모두 예외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

대상판결은 이어서 ‘사용자가 기간제법 4조2항의 사용기간 제한(2년)을 회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해 체결했으나 각 근로관계의 계속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는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는데,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 탈법 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대상판결의 이 부분 판시는 "사용자의 근로자 사용이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하기만 하면 기간제법 4조1항 단서 1호의 예외사유에 해당된다"는 형식적 판단으로 결과적으로 탈법행위를 방치한 이 사건 하급심들의 형식적 판단을 바로잡은 것이자, 특히 원심 판시내용과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 사용자들에게도 경종을 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대상판결은 "기간제법 4조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금을 지급받은 후 다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근로자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기간제법 4조2항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퇴직과 재입사 형식을 거친 것에 불과한 때에는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근로기준법 23조는 해고가 정당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의원사직의 외양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사용자의 방침에 의한 것이라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근로관계의 종료가 해고에 의한 것이 아닌지 살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사건 하급심들은 근로기준법 23조를 도외시하고 일반 민사법리만을 적용해 사직서 제출이 강압이나 강박이 없으면 사직의 의사표시로 유효하다고 해서 사용자의 탈법행위를 방치한 셈인데, 대상판결은 이를 바로잡은 것이다.

4. 나가며

대상판결은 기간제법상 사용제한의 예외사유인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 관한 해석과 적용에 있어 탈법행위를 방치한 하급심들의 판결을 바로잡았고, 그 의의가 적지 않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교정은 현행법 테두리 내의 것이다. 대상판결이 원심의 판단을 바로잡았다고 해도 현행 기간제법을 바로잡은 것은 아니며 법원으로서는 그럴 수도 없다. 근로자에게 일자리는 그야말로 밥줄이자 명줄이므로 기간제 근로자의 처지는 침몰이 정해진 배를 탄 신세와 다를 바 없다. 현행의 기간제법은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강화를 목적으로 내세우지만(기간제법 제1조), ‘침몰’을 방치하면서도 그 배를 탄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발상과 접근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예외사유의 ‘사업 또는 특정한 업무’는 그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일반적인 것이어서 포괄범위가 너무 넓어 사용제한은 거의 허울에 지나지 않는데,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현행 기간제법의 문제를 교정한 것은 아닌 것이다. 이를 유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여전히 수많은 근로자가 침몰하는 배에 타도록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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