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이 글은 ‘사회협약 체결운동을 제안한다’는 지난 칼럼의 연속이다. 민주노총에 초점을 맞춰 얘기해 볼까 한다.

정부와 정치권도 그렇고, 경영계와 한국노총도 그렇고, 심지어 민주노총 내부에서조차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쟁의와 더불어 교섭도 노동조합의 무기인데, 노동조합총연맹인 민주노총이 반대할 리 없다. 때로는 교섭 자체가 투쟁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해하는 이유는 민주노총이 오랫동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측면에서 이유가 있다.

첫째, 민주노총 내부 사정이 작용했다. 김대중 정부, 1기 노사정위 교섭에 참여한 민주노총 집행부가 정리해고를 합의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격심한 내부 불신과 갈등을 불러왔다. 그러고서 노무현 정부, 3기 노사정위 참여를 둘러싸고는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까지 있었다. 그 뒤로 웬만해서는 누구도 노사정위 참여를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둘째, 노사정위 무용론이 작용했다.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와 세 차례 무산 상황에서도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미련을 못 버리고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우회로로 선택했다. 한데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노사정위 참여를 적극 추진했던 세력조차 회의론에 빠졌다.

셋째,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사정위 불신을 굳히는 데 한몫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재계 편을 들면서 민주노총 배제와 한국노총 들러리 전략을 유지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그 판에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 문제는 쟁점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노총도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여기서 잠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불신하고 갈등한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뭔가 비었다는 점을 눈치채고 의아했을 것이다. 그렇다. 2기 노사정위 단계를 건너뛰었다. 2기에 참여하는 문제를 놓고 대의원대회에서 논란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작은 소란 정도로 참여가 결정됐다. 노사정위 참여를 반대하던 세력들은 당시 집행부가 황당한 합의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랬다. 노사정위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의 격한 갈등은 1기 합의를 이끌었던 집행부 세력에 대한 불신이 배경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민주노총을 떠났다. 이 얘기를 꺼낸 까닭은 노사정위 참여 문제가 민주노총 내부에서 애초부터 격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사회적 교섭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자기모순이다. 3기 참여를 격렬하게 반대한 세력이 현 민주노총 집행부 흐름인데, 그 사업 속에 노·정 교섭이 있다. 정부와 사회적 교섭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차기 정부와의 교섭을 염두에 두고 교섭실무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 있다.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책임자로, 각 산별노조·연맹의 임원과 담당자들이 참여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또 있다. 민주노총은 국회를 통한 교섭 틀을 주장했고, 추진했다.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지만, 한국경총과의 노·사 직접교섭도 요구했다. 노사정위가 아닌 범주에서는 이것저것 구상을 했고 시도도 했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서는 내부에서 갈등하지 않았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교섭 문제가 주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극단으로 치달은 양극화 문제의 중심에는 재벌과 노동 문제가 있는데, 어떤 당이 집권하든 여소야대가 되는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힘만으로는 간단한 개혁조차 어림없다. 정부는 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사회적 교섭 판을 열려고 할 것이다. 그때 민주노총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사회적 교섭 판이 열릴 때, 각자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떻게 교섭 실력을 발휘할 것인가의 문제는 차후로 놓고, 일단 민주노총이 판에 참여하는 문제를 안팎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판을 깔면 안 된다. 20년에 걸친 노사정위 과정이 있었기에, 앞으로의 사회적 교섭은 결과 못지않게 판을 열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배제를 얘기하기도 한다. 민주노총이 스스로 거부하게 하거나 뛰쳐나가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다. 그렇게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는 무례가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도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 처음부터 주눅 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상상한다. 사회적 교섭 판에 들어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하청노동자·청년 등 밑바닥 노동자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면서 대안을 내놓고, 광화문광장에서 그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교섭 보고대회를 하면서 힘을 모으는 상상 말이다. 그러면서 촛불 시즌2를 이끌어 가는 민주노총을 상상한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