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노동조합들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또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무분별한 비정규 고용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규범과 국내법의 제정 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등 북미지역 노조들이 전자의 방식에 주력하고 있다면, 유럽 국가들은 후자의 방식을 주로 택하고 있다.

박영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기획국장

비정규 노동자 운동은 이미 21세기 세계 노동운동의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세기말의 10여년 동안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공통적으로 지향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두 그룹의 새로운 노동자 집단이 출현하게 되었다. 즉 고도의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개인주의 경향이 대단히 강한 소수의 지식노동자와 파트타임, 임시직, 파견, 도급 등의 형태로 점점 더 그 수가 늘고 있는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것이다.

문제는 이 두 그룹의 노동자 모두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반면, 노동운동의 주력부대를 형성해 왔던 제조업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세계화와 공격적인 산업구조조정으로 점점 더 그 수가 줄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정규 고용의 증가는 곧 조직노동의 약화를 의미했다.

* 입법적 규제와 조직화 운동의 흐름

이 때문에 최근 몇 년간 각국의 노동조합들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무분별한 비정규 고용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규범과 국내법의 제정 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 노조들이 전자의 방식에 주력하고 있다면, 유럽 국가들은 후자의 방식을 주로 택하고 있다. AFL-CIO가 조직연구소(OI)와 유니언서머(Union Summer) 등을 통해 매년 '조합원 1백만' 증가를 목표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면서 저임금 하층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추진하고 있는가 하면, 유럽 노조들은 유럽노조총연맹(ETUC) 차원에서 1997과 1999년에 각각 파트타임과 기간제 고용에 관한 EU 차원의 협약을 만들어내고 이를 회원국의 국내법 제정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파견노동과 관련해서도 EU 협약의 도출을 위한 노사정 협상이 2000년 5월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유럽 지역이 산별노조체제 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의 정치환경에서 연방 노동법의 개정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정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노조내 대표성을 높이는 문제는 똑같이 관건이 되고 있다. 1997년에 파견법이 통과되면서 이탈리아의 세 노총이 NIdil(CGIL), Alai(CISL), Cpo(UIL) 등의 전국적인 비정규노조를 창설하고 98년 5월에 파견노동에 관한 전국공통협약을 맺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개별 주단위의 법률 및 조례의 제 개정이 일찍부터 확산돼 왔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는 기업들을 상대로 한 '기업윤리강령(COC)' 캠페인도 적극 전개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운동의 핵심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공식통계상 26%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보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일반노조 등 다양한 형태의 노조들이 시민단체 등과 함께 조직화와 제도개선 운동을 활발하게 벌여나가고 있다. 다른 아시아 지역 사례로는 농업과 도시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는 인도가 있다.

* 우리가 다시 희망으로 선다면

흐름을 정리하자면 입법적인 논의에 있어서는 영국과 네델란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국가들이 EU 협약을 국내법에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재규제화론(re-regulation)이 다시 힘을 얻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국제노동기구(ILO) 차원의 '신 노동자 권리헌장'의 제정 필요성도 지적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남용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화에 있어서는 다양한 고용형태의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노조조직론의 재정립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에서는 직업별노조와 같은 노동시장 중심의 접근을 여전히 강조하는 흐름이 있는가 하면, 기존의 조직관할 경계를 초월한 거주지 중심의 '지역연대와 평생-노동운동'을 주창하는 '지역공동체주의'도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고용의 남용을 막고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률이 부실하고, 그마저 기업별노조 체제의 장애물이 겹겹이 놓인 상태에서 비정규 운동이 말그대로 처절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20세기말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한국의 노동운동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희망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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