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국회에서 시작된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끝내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처리를 요구해 온 노동 4법 중 하나였음에도 정작 기회가 오자 정부도 옛 여당세력이던 자유한국당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에서 노동시간단축 근로기준법 개정안 의결에 실패한 것도 기존 정부·여당안(김성태 바른정당 의원안)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가이드라인 된 김성태 의원안=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0일 열린 고용노동소위에서 원내 5당은 1주일을 7일로 보고, 근로시간을 최대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업장 규모 300인 이상은 2년간, 300인 이하는 4년간 주 52시간 시행을 유예(면벌조항)하기로 의견접근도 이뤘다.

오랜만에 대화 분위기가 고조됐고 소위 위원들도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나흘 뒤인 24일 속개된 소위에서는 자유한국당쪽에서 특별연장근로, 휴일근로·연장근로 중복할증, 탄력적 근로시간제 같은 핵심 쟁점을 제기했다. 그리고 27일 마지막 소위에서는 중복할증을 비롯한 쟁점들에 대한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3월 임시국회 합의는 좌초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논의는 김성태 의원안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였다. 김성태 의원안은 1주일은 7일로 규정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고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기업규모에 따라 1년씩 유예기간을 둬 4단계에 걸쳐 시행하고 특별연장근로(1주 8시간)를 4년간 허용하기로 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2주에서 1개월,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내용도 들어갔다.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으로 2주 이내의 일정한 단위기간을 평균해 주 40시간,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할 수 있게 했다.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3개월 이내 단위기간을 평균해서 주 40시간, 하루 8시간을 일할 수 있다.

◇노동시간단축 논의 왜 좌초됐나=박근혜 정부에서 정부·여당은 노동 5법에 이어 노동 4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런데 막상 기회가 오니 고용노동부와 자유한국당은 새로운 제안이 나올 때마다 김성태 의원안을 고수하거나 대선 이후에 논의하자고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금 같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김성태 의원안을 벗어나는 논의는 어렵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야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회발 노동시간단축 논의는 중소기업의 반발을 불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7일 기자회견에서 “국회 논의는 9·15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지 않고 경영계에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중복할증까지 인정되면 연간 추가부담액은 8조6천억원으로 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현행법대로 즉각 주 52시간을 시행하면 된다”고 했고, 한국노총도 “주 68시간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했던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은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 이후 노동시간단축 가능하려면=이제 공은 대선 이후로 넘어갔다. 27일 소위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주장한 대로 대선 이후 노동시간단축 논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재개되더라도 김성태 의원안이 기준이 된다면 노동시간단축을 담은 근로기준법 합의 불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세계 2위의 장시간 노동 국가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새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새 정부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주 68시간 행정지침처럼 모법을 위배한 잘못된 지침을 없애는 것”이라며 “주 52시간을 규정한 현행 법을 그대로 시행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 시행시 중소기업 부담도 처벌유예로 얼마든지 경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새 정부가 잘못된 행정지침을 폐기하면 된다”며 “다만 기업규모별로 단계적으로 단속에 들어가면서 중소기업에는 시간을 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꼭 면벌조항이 아니라도 행정조치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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