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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공화국-노동시간단축에 관한 공약과 입법논의를 바라보며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1항이 죽어 버린 조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2017년 봄이다. 20차까지 타올랐던 촛불의 힘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도록 하고 오늘 전 대통령 박근혜에 대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이르게 했다. 촛불시민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대통령을 비롯한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증명하고 확인했다. 이 나라 국민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시민으로서, 주권자로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전 대통령 박근혜는 몰랐어도 국민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주권자로서 박근혜를 대통령에서 내쫓을 수 있다고 믿었고, 행동했고, 마침내 해냈다. 무지의 공화국은 아니었던 셈이다.

지난 25일, 21차 촛불집회는 어느 때보다 규모가 작았다. ‘박근혜 퇴진’의 촛불집회 구호는 더는 외칠 수 없는 구호가 돼 버렸다. 주최단체 퇴진행동은 적폐 청산, 박근혜 구속을 선창했지만 확실히 ‘박근혜 퇴진’ 때보다 따라 외쳐야 할 참석자는 적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 결정 이후 전개되고 있는 ‘박근혜 없는 봄’은 대선 주자들의 차지가 되고 있다. 광장의 구호가 급격히 대선주자들의 발언으로 대체되고 있다. 언론은 그들이 발표하는 정책 공약을 앞다퉈 뉴스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노동문제도 주요 정책으로 발표하고, 당내 예비경선에서 토론하고 있다. 노동정책 공약 중 노동시간단축에 관해서 경쟁적으로 내걸고 있다. 이와 관련해 27일 나는 한 TV방송 시사프로에 나가 인터뷰를 했다. 대선주자들이 노동시간단축을 일자리 나누기와 창출, 내수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렇게 묻기에 나는 대답해야 했다.

2. 노동시간단축은 그 자체가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휴식 있는 건강한 삶을 위해 노동자권리로서 장시간 노동이 규제되고 법정노동시간제가 준수돼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 일자리 창출, 그리고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다. 일자리 나누기와 창출,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시간단축 없이 세계 최장 수준으로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장래에 일자리와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노동자는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노동시간단축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논의될 것이 아니다.

현재 대선주자들이 발표하고 있는 노동시간단축 방안은 주 52시간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우리나라 노동법은 연장노동을 포함한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노동은 별도인 양 왜곡해 주 68시간의 노동을 허용해 왔다”고 한 후, “주 52시간의 법정노동시간만 준수해도 노동시간 특례업종을 제외할 경우 최소 11만2천개, 특례업종까지 포함하면 최대 20만4천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면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재명도 “(노동)법이 정한 주 52시간 법정노동시간만 지켜도 일자리 50만개를 확보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근로감독관 등을 대폭 늘려 엄격히 법 집행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안철수는 1일 11시간 최소연속휴식제를 도입하고 연간노동시간을 1천800시간대로 단축하겠다고 발표했고, 손학규는 “현재 주 52시간으로 돼 있는 노동시간을 준수”하는 등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 유승민도 연간 초과노동시간을 제한하고 1일 최소연속휴식제를 도입하고 퇴근 후 업무 지시를 초과근로에 포함하는 ‘칼퇴근법’을 제시했으며, 남경필은 연장근로 포함 주 52시간 근로 확립과 야근 없는 날의 확대 시행을 발표했다. 안철수와 유승민은 1일 11시간 최소연속휴식제를 내세웠는데 이는 나머지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니 적어도 주 52시간 노동제 보다 단축된 노동시간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오늘 유력 대선 주자들은 주 52시간 노동제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대선 주자들이 속한 당의 국회의원들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주 52시간 노동시간단축법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장규모에 따라 일정 기간 유예하는 걸 두고서 논란이 되고 있을 뿐이다.

3. 벌써 몇 년째인가. 이 칼럼난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나는 주 40시간 노동시간단축에 관해 말했었다. 주 40시간 노동시간단축은 박근혜 정권의 이른바 노동개혁법안 중 일자리 나누기와 창출,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 추진해 왔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었다. 주 5일제에서 휴일 2일(통상 토요일·일요일)을 제외한 주 52시간의 현행 노동시간제를 휴일까지 포함해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되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방식으로 일정기간 시행을 유예하고 8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해 주겠다는 개정안이었다. 박근혜 정권 아래서 노동개혁법안 추진이 어려울 때에도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제외하고 이 노동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입법 추진에 관해서는 여야 간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 간 합의했던 사항이라며 국회 소추 이후 전개된 탄핵정국에서도 이 법안은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노동시간단축 법안은 적폐 청산의 대상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별일이었다.

근로기준법 50조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일을 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소정노동시간을 규제하는 주 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노동제를 선언한 것이다. 이를 위반해서 초과해서 노동자가 일하면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근로기준법 110조). 이 법정노동시간은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해 낸 노동시간, 노동자권리다. 5월1일 노동절, 국제노동기구(ILO) 창설과 1호 협약, 수많은 나라에서 법정노동시간 도입 등 노동운동의 역사는 바로 이 법정노동시간을 두고서 전개돼 왔다. 1일 8시간에 1주 48시간에서 1주 40시간, 이어 35시간으로 법정노동시간은 변경돼 왔어도 장시간 노동을 국가의 법으로 규제해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바뀐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의 근로기준법 53조는 당사자합의로 이를 1주에 12시간 연장해서 일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당사자합의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이러한 당사자합의가 있어야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통해 노동시간을 정해 사업장 노동자에 적용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당사자합의를 통해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근로기준법 53조는 당사자합의로 정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50조의 법정노동시간에 관해서 당사자합의로 이를 1주 12시간 연장해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선언해 버렸다. 우리의 법은 우리를 죽였다. 만약 53조의 당사자합의를 50조 법정노동시간제가 규제하는 대상인 노동시간을 정하는 당사자합의와 다름없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50조의 법정노동시간은 연장근로를 허용한 53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근로기준법 50조 법정노동시간이 쓸데없는 규정이 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50조는 원칙이고, 53조는 그 법정노동시간의 예외로서 연장근로라고 해석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도, 법원 판례도 그렇지 못했다. 법은 예외를 원칙으로 해석·집행됐다. 그리고 노동부는 여기에 휴일근로는 1주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 5일제의 경우 1주일은 7일이 아닌 5일이라고 천지창조의 행정해석(노동부 2000.9.19, 근기 68207-2855 등)을 통해 노동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집행해 왔다. 1주 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이 53조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1주 52시간, 그리고 여기에 휴일근로 2일*8=16시간을 더하면 우리의 노동자는 1주 68시간이 법이 정한 최장 노동시간이라고 법 집행을 해 왔던 것이다. 이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노동은 별도인 양 왜곡했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미 노무현·김대중 정부에서 노동부가 행정해석해서 집행해 왔던 것이었다. 주 52시간 노동시간을 두고서는 그저 엉터리 노동부 행정해석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너는 1주일이 5일이냐”고 묻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노동부 관료는 공무원으로서 법을 집행할 최소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니 재교육을 받도록 명령하면 될 일이다. 이걸 두고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을 모욕하는 일이다. 노동제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법 개정으로 변명하는 짓이다. 53조 연장근로 12시간에 관해서도 예외를 예외로 해석하면 충분한 일이다. 우선 노동부가 예외로서 행정해석해서 법 집행하도록 하고, 그러면 법원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법정노동시간의 취지에 부합하게 판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법정노동시간은 1주 40시간이라고 법대로 확인될 일이고, 우리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한편 심상정은 “68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황당한 논의다. 민주당 후보들은 법정노동시간이 52시간이라 말한다. 틀렸다. 그런 관점에는 문제가 많다. 법적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 한해 노동자들의 동의를 거쳐 12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법정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인지”라고 묻고 있었다. 지난해였나.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법안에 관해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심상정 의원실에 갔었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음이 틀림없다고 지금 나는 이 노동제에 무지한 공화국에서 하나만이라도 어디냐 하고 있다. 무지를 통해서도 노동자권리는 짓밟힌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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