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무노조 신화 삼성재벌에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기업인수 이전에 노조가 있었던 동방생명보험이 유일했다. 삼성에 노조가 처음 생긴 건 1977년 10월22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던 제일제당 김포공장이었다. 주동자는 당시 열아홉 살 김광숙(58년생)이었다.

노조설립 사실이 알려진 같은해 10월24일 제일제당은 긴급과장회의를 열어 악랄한 탄압과 노조파괴 책동을 시작했다. 회사는 밤 9시 잔업이 끝나자 노조결성에 참여한 13명을 차례로 불러 노조탈퇴를 강요하고 입사보증인과 친척까지 동원해 해산을 강요했다. 생산과장은 김광숙 부지부장을 불러 “제대한 오빠를 취직시켜 줄 테니 손잡자”고 회유했다. 김광숙은 밤 12시가 넘어 도망쳐 집에 갔다. 노조 조직부장 오경식은 다른 부장에게 불려 갔다. 부장은 밤 10시가 넘어 배고프다며 집에 보내 달라는 오경식에게 "중국집에 가자. 맥주 마시러 가자"고 추근댔다. 당시 오경식은 만 열다섯 살 여성노동자였다.

다음날에도 회사는 농성 중인 오경식 조직부장의 오빠와 언니를 데리고 나타나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니 집에 데리고 가라”고 유인했다. 그리고는 회사로 노조간부 11명을 다시 데려가 식당에 모아 놓고 "노조 탈퇴 만세"를 외치도록 강요했다.

10월28일 아침 회사는 매수한 공장 동료들을 동원해 노조간부들에게 온갖 욕설을 하게 했다. 심지어 얼굴에 침을 뱉고 머리채를 뜯어 당기고 옷을 벗기는 등 지능적이고 간교한 탄압 수법을 사용했다. 노조 탈퇴서를 쓰지 않고 버틴 김광숙과 오경식은 28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미친 ×들이 온다”는 욕설을 들었다. 직장과 남자 사원들은 김광숙에게 달려들어 “이 ×을 그냥 죽이지 말고 토막 내 죽이자”고 욕하고 뺨을 때려 실신시켰다.

삼성은 회유책도 병행했다. 시커먼 보리밥에 김치 한 가지만 나오던 점심식사가 갈비탕·불고기·닭곰탕으로 바뀌었다. 삼성은 27개 방계회사에 비상령을 내리고 노조방해에 앞장섰다. 김광숙과 오경식을 뺀 나머지 11명의 노조간부들을 산업시찰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차에 태우고 유람시키며 불신을 조장했다.

10월30일 김광숙이 작업장에 들어가다가 굵은 호스로 물벼락을 맞았다. 화장실 청소를 시키다 못해 총무과로 부서이동시키고 정문 옆 예비군 중대사무실에 근무시켜 현장 노동자들과 접촉을 막았다. 점심시간도 김광숙만 오후 2시로 바꿨다. 오경식 조직부장에게는 전과 달리 웃음으로 대하며 둘을 이간질했다. 김광숙과 오경식은 한 달을 버티다가 그해 11월17일 해고되거나 사표를 냈다.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을 상대로 벌인 단결권 투쟁은 노동계에 많은 숙제를 남긴 채 끝났다.

꽁보리밥 점심을 갈비탕으로 바꾼 걸 보면서 최근 삼성이 보여 준 유연함에 새삼 놀란다. 삼성은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는 70여명의 연구자를 동원해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400쪽 분량의 세련된 보고서를 냈다. 반면 돈 내놓으라고 생떼 쓰는 박근혜 정부에 와선 계열사 사장까지 동원해 말을 사 주면서 정권과 관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삼성은 상황에 따라 천의 얼굴로 유연함을 발휘해 왔지만 본질은 한 치도 변함없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지옥불도 마다하지 않는다. 70년대 어린 여성노동자에게 가했던 원시적 폭력이 삼성의 진정한 민낯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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