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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다, 노동정책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고용(employment)이라고 하는 계약형태를 취하든 그렇지 않든, 인류의 모든 사회에서 인구의 절대다수는 노동을 해 왔다. 고용은 노동의 특수한 존재방식이고,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자본주의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역사 속 석학들의 통찰에 기댄다면, 고용이라는 틀에 노동을 담아 기업·경제·사회를 꾸려 가는 지금 같은 노동의 존재방식 역시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일체의 노동은 지배(domination)와 분리되지 않았다. 원시공산제 사회를 제외하고는 고대·중세 그 모든 비자본주의적 지배질서하에서,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체제하에서, 심지어 냉전시대에 잠시 존재했던 구사회주의 사회들이나 지금의 북한 같은 체제하에서도, 모든 노동은 지배의 그물망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미래사회의 모습이 인류에게 장밋빛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새로운 디지털기술을 매개로 해서 노동의 의미가 바뀔 것이며, 그를 통한 새로운 지배와 통제의 질서가-인간과 기계 사이에서가 아니라-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4차 산업혁명 앞에서 인간해방이나 노동해방을 꿈꾸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기회, 일자리 상실로 재편되는 지배질서의 패배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할 뿐이다.

모든 지배는 복종과 그것에의 유인책, 보상이라고 하는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갖는다. 고용이라고 하는 자유계약 형태의 노동수행 방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 모르지만, 이 안에도 이러한 지배의 본질적 속성이 내재해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고용관계에 돌입하는 노동자들은 종속적 근로자로서 사용자와 계약을 체결하면(취직·입사), 다른 한편에서 노동법으로 통칭할 수 있는 다양한 법률들이-즉 국가가-보장하는 처우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이렇게 고용에는 종속과 보상의 사회적 교환의 원리, 그리고 노동지배 원리가 작동하도록 돼 있다.

오늘날 고용의 유연화(flexibilization)라고 하는 자본의 전략은 표피적으로는 노동력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증진 기제로서의 의미를 지니지만, 그 배후에는 노동에 대한 지배방식에 변화를 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유연화의 기제는 여러 가지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돼 온 내적 수량적 유연성(internal numerical flexibility)의 강화, 다시 말해 비정규 형태의 고용을 도입하고 늘리는 것은 노동자 집단에 대한 ‘갈라치기’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명목상 '인건비 절감'은 단순히 경제적 비용의 절감만이 아니라 지배비용상에서의 효율성 증진, 미시적 노동정치상의 비용절감까지 의미한다. 자본이 해고의 자유를 더 누리고 노동이 고용지속의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는 계약을 맺게 되면, 노동은 자연스럽게 더 말을 잘 듣고, 덜 저항을 하고, 더 적은 보상기제라도 수용할 준비를 하게 된다.

갈라진 또 다른 편에는 권리박탈로부터 면제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주변이 무수히 늘어나는 아웃소싱·간접고용·비정규직 속에서 이들은 과거에는 당연했지만 이제는 특별해진 자신에게 적용되는 보호장치들에 감지덕지하게 된다. 가끔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파업도 하지만, 현재적 지배관계의 큰 질서 자체를 변화시키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물질적 보상의 증대나 자신들에게까지 권리박탈이 이뤄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 정도에서 만족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본은 유연화를 통해 노동이 뭉쳐 골치 아프게 거창한 요구들을 하는 정황을 모면함으로써 지배비용의 절감을 보게 된다. 목소리 내는 정규직들에게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몇 푼 더 쥐어 주고, 점점 더 소리 내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을 양산하고 또 선호해 간다.

스스로 새 정부를 맡아 꾸려 가고 싶다고 선언하는 정치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고용정책을 들어 보면 별로 신통한 게 없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지배질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새로운 개혁을 체계적이고 통으로, 또 누구와 손잡고 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아예 없다. 고용의 개수를 늘리고 보호를 더 받는 고용계약을 장려하겠다는 식의 밋밋한 이야기를 넘어 자본이 노동을 갈라치며 구가해 온 지금의 지배질서를 어떻게 미래지향적이고 민주적으로 재편할 것인지, 그것을 위해 누구에게 어떤 힘을 얼마나 더 실어 주고 뺄 것인지, 고용정책 말고 노동정책을 말하는 후보, 정녕 이번 대선과는 무관한 존재인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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