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연인원 1천5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촛불을 든 지 반년이 돼 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초읽기에 들어갔고 조기 대선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2016~2017년 주권자들의 촛불항쟁은 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뒤를 이어 식민과 분단과 독재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인 역사적 사건이다. 촛불시민의 힘은 위대했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와 공범집단을 처벌하고 응징하는 것만으로는 양극화와 하향평준화로 병들어 온 사회를 바꿀 수 없다.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쌓인 적폐를 청산할 때 비로소 새로운 공동체 건설의 열망은 실현될 수 있다. 촛불이 거리와 광장에서 우리 모두의 일터와 삶터로 번져 가야 하는 이유다.

괴물과 맞서 싸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을 닮아 가기도 한다.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자본과 권력뿐만이 아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내부로 틈입한 적과도 맞서야 한다. 우리 안의 적폐를 반성하고 냉철한 자세로 시정하지 않고 사회가 바뀌길 바라는 건 위선이자 모순이다. 드러난 기득권층의 숱한 문제들보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영역에서 벌어진 문제들을 바로잡는 것이 훨씬 힘겹고 만만찮다. 불편하고 난감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스스로를 바꾸지 않고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건 자가당착이다. 성찰과 혁신 없는 운동은 그 자체로 자신의 무덤이다.

푸른사람들(옛 푸른시민연대). 94년 창립해 올해로 23년째를 맞은 서울시 동대문구 대표 시민단체다. 어머니한글학교와 다문화어린이도서관, 이주민들을 위한 한국어교육과 청소년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문종석 대표는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대표를 맡았다. 이곳에서 지난해 11월 어이없는 부당해고가 발생했다. 사적인 카톡채팅방 대화 내용을 이유로 5명의 상근활동가에게 함께할 수 없다며 문 대표가 구두로 해고를 통보한 것이 발단이었다. 문제가 된 채팅방은 평소 문 대표가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소통 방식에 대한 상근활동가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아 생긴 것이었다. 아무리 표현이 감정적이었다 하더라도 같은 단체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나눈 카톡방 대화가 최고 수위 징계인 해고사유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인사위원회 개최조차 해고 대상자들에게 제대로 통지하지 않았고, 해고는 서면통지가 의무임에도 기본적인 해고 절차조차 따르지 않았으며, 한 활동가가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해고통지서를 부랴부랴 작성했다. 처음 해고통지서에는 “운영진과의 불신”을 언급하며 카톡방 사건으로 인한 징계임을 드러냈다가, 전체 해고자들에게 다시 전달된 해고통지서에는 “사업조정에 따른 인원감축”으로 바꾸기도 했다. 문 대표는 해고자들에게 “해고사유는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취약한 시민단체 대표가 명백한 부당해고를 강행한 것이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문종석 대표의 헌신과 노고를 폄하하거나 함부로 재단할 생각은 없다. 공과는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모름지기 시민단체 대표라면 투명하고 진솔해야 한다. 상근활동가들의 노동인권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인식도 갖춰야 한다. 문 대표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 흔연히 사과하고 부당해고를 철회하면 될 텐데 독단과 아집이 지나치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일부 자원활동가들을 앞세워 소모적인 대리전을 기도하는 걸 보면서는 우려가 커진다. 푸른사람들 정상화를 위해 당사자들이 손을 맞잡을 가능성이 점점 엷어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

나눔과 돌봄이 순환되는 마을공동체를 지향하는 푸른사람들의 가치에 비춰 보더라도 부당해고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사건이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시민단체로 거듭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문종석 대표는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해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상근활동가들에 대한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결자해지'라 했다. 무엇보다 해고로 고통받고 있는 상근활동가들의 원상회복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임을 명심해야 한다. 해고자들에 대한 부질없는 여론몰이와 근거 없는 왜곡도 중단해야 한다.

새삼 시민운동과 사회운동 내에 쌓인 적폐부터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개선하고 혁신해 나가야 할 때다. 빠른 시일 내에 푸른사람들이 풀뿌리 지역시민단체로서 본분을 되찾기를 바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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