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군부독재 아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부의 편중이 심화했다. 극심한 양극화는 저소득층에게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복지정책을 이야기하면 “나라 경제가 파탄 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002년 브라질 이야기다. 룰라 노동자당 후보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 말자”라며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 슬로건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도 많이 회자되고, 인용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일주일 남짓 앞두고 새삼스럽게 15년 전 이 구호가 떠올랐다. 행복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짐작건대 두려움의 원인은 행복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버려야 할 옛것에 대한 익숙함과 추구해야 할 새것에 대한 생경함일 것이다. 노력 끝에 닿은 곳에 행복의 파랑새가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달 1일 광장은 지키려는 옛것과 추구하는 새것이 강렬하게 부딪쳤다. 언론은 이를 태극기와 촛불로 표현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제자리에 머물려는 것과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의 거센 쟁투였다.

우리는 알고 있다. 옛것을 보듬고 살기에는 지금 우리는 많은 부분이 결핍된 사회에 살고 있다. 세월호의 아이들, 구의역의 비정규직 김군,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 송파의 세 모녀처럼 국가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은 결핍의 희생자다. 사회가 한 발만 앞으로 나아갔어도, 아니 거꾸로 가지만 않았어도 지키고 보호할 수 있었던 국가의 구성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앞둔 박근혜의 마지막 변론은 국민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만든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갈 수 있고, 모든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는 그의 변명은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다수로부터 소수를 보호하고 배려하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대한민국의 미래와 역사를 위해 바람직하다”며 재판관들에게 선처를 요구하는 뻔뻔함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염치’의 실종을 보여 준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다룬 영화 <관상>에서 주인공 내경(송강호)은 한명회(김의성)에게 바다를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난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시대의 모습은 광장을 밝히는 촛불로도, 파도를 만들고 부수는 바람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지금 시대가 가고자 하는 모습은 보수와 수구가 아닌 결핍을 채울 더 많은 인권,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다.

하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두려움은 어제와 다름없는 내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날들이 여전히 “돈도 실력”이라는 말이 통하는 사회라면, 수백명의 아이들이 까닭 모를 죽음을 당하고 수천명의 부모가 피눈물을 흘리며, 수천만의 촛불이 가슴 아파하며 광장을 밝혀도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떠나고 남은 자리에 사발면 하나와 사용하지 못한 수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사회라면, 그곳에 행복은 없다.

우리, 더 절실하고 조금 더 간절하게 우리의 행복을 요구하고, 만들어 가자. 한 치의 두려움 없이, 망설임 없이.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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