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사단법인 SK그룹노동조합임직원혐의회 출범식 참가자들이 노동의례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유세차. 사단법인 SK그룹노동조합임직원협의회가 번성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김두영(47) SK해운노조 위원장이 고사상에 절을 하고 돼지입에 봉투를 물리자 옆에서 지켜보던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봉투가 너무 얇다"고 타박했다. 김두영 위원장이 "수표"라고 귀띔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정묵 SK이노베이션노조 위원장·김임섭 SK케미칼노조 위원장·전환희 SK텔레콤노조 위원장·강국모 SK하이닉스청주노조 위원장·허정우 SK하이닉스이천노조 위원장·이동용 SK인천석유화학노조 위원장이 연이어 고사상에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했다.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 사회공헌활동 확대"=㈔SK그룹노동조합임직원협의회(SK노협)가 20일 출범했다. SK텔레콤·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 이천공장·SK하이닉스 청주공장·SK해운·SK케미칼·SKC울산공장·SK인천석유화학 등 SK그룹 8개 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저동 명동성당 인근 SK그룹노조임직원협의회 사무소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SK그룹에는 노조 위원장들의 모임인 'SK그룹노조대표자협의회'가 있었다. 2005년 출범했는데, 친목모임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출범한 SK노협은 SK그룹노조대표자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던 노조들이 "친목모임으로는 SK그룹사 직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만든 사단법인이다.

초대 의장인 김두영 위원장은 "SK그룹노조대표자협의회에서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회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간 아쉬움이 있었다"며 "위원장들만의 계모임이 아닌 형식을 갖추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SK그룹 계열사 노조들은 고용안정과 구조조정 문제에 한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계열사마다 인수합병과 분리매각으로 고용불안 이슈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노조별·현안별로 각각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사안별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공동대응하자는 요구가 많았다는 얘기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이 사단법인 형태의 협의회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자칫 '그들만의 리그'로 비춰질 수도 있다. 김봉호 사무총장(전 SK텔레콤노조 위원장)은 "어느 순간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금수저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사회적으로 해야 하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신규채용 문제뿐만 아니라 그룹사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와 처우개선, 각 노조별로 산발적으로 하던 사회공헌활동 강화, 산업재해 문제 해결 등을 중심사업으로 놓겠다는 설명이다.

이런 구상을 결심으로 보여 주듯 SK노협은 이날 청년유니온 임원들을 초청했다. 송효원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청년유니온이 청년들과 함께하는 노조다 보니 연대단체나 인사들이 절박할 때가 많다"며 "SK노협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지 기대되며 청년유니온과도 연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이천노조 위원장 출신인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그동안 SK그룹노조대표자협의회가 제한적으로 운영되면서 참여하고 싶어도 함께하지 못한 조직들이 있었다"며 "SK노협 출범을 계기로 주변을 아우르고 연대의 끈을 놓지 말자"고 강조했다.

◇SK노협 발족에 SK그룹 '난색'=이름에 '임직원'이 들어간 만큼 SK노협은 사측의 참여도 요구하고 있다. 회사들은 SK노협 참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실제 이날 출범식 직후 SK그룹 인재육성위원회 조돈현 부사장과 김두영 의장을 비롯한 노조위원장들이 만난 자리에서도 입장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두영 의장은 "법인체를 만들어 그룹과 상대하겠다고 하니 협의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노사상생과 발전을 위해서는 회사도 협의회를 인정하고 함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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