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안녕하십니까. 저는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도 거지도 아닙니다. 저는 최영은입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인간입니다.”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앞에서 피켓시위를 한 뇌병변 장애인 최영은(27·사진)씨의 피켓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씨는 뇌병변 장애로 9살 때 시설에 입소했다. 현재는 시설에서 나와 공동주택에서 지낸다. 뇌병변 장애는 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등 뇌의 병변으로 발생한 신체적 장애로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장애로 거동이 불편해 자립생활이 불가능한 것 외에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

최씨가 시설이 아닌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활동보조 같은 정부 복지혜택이 필수다. 그런데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으려면 장애등급이 3급 밑으로 떨어져선 안 된다. 뇌병변 장애인은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신체장애 정도를 중증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히는 셈이다.

최씨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이날 오후 사회보장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공단 충정로 사옥 앞에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했다. 전장연은 최근 화제가 된 영화 ‘나, 다니엘블레이크’에서 모티브를 따 ‘나는 OOO입니다’ 선언을 벌였다. 영화는 질병·실업수당 등 공공부조를 선별적으로 지급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국 사회복지 시스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공공부조 방해하는 사회보장위원회”

전장연에 따르면 2013년부터 시행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폐해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법은 공공부조와 사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1996년 시행됐다.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1년 대표발의했다. 사회보장위원회를 구성해 사회보장과 관련한 시책을 심의 조정하는 역할이 부여됐다.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과 의무적으로 협의하도록 해 논란이 일었다. 복지부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사회보장위원회가 조정한다. 지자체가 소외계층의 복지를 늘리면 사회보장위원회가 조정할 수 있도록 명문화 한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지방자치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장연은 “한국형 복지모델을 만들고 사각지대 없는 복지를 내세우면서 법을 개정하더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복지정책을 구조조정하는 방향으로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2015년 4월 정부는 3조원의 재정 절감을 위해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했는데 사회보장위원회가 지자체 노인·장애인 복지사업을 구조조정했다는 게 전장연의 설명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지자체의 장애인 복지 사업 230개(1천813억원) 사업을 정비 사업으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장애인의 활동지원과 관련된 사업은 37개에 달했다. 지자체 사업이 축소 또는 폐지되면서 인천시로부터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던 장애인 3명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인간다운 삶 위해 사회보장기본법 개정해야”

전장연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촉구했다. 현행법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 또는 변경할 때 복지부와 협의를 거치도록 한 게 사회보장 확대와 지방자치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전장연 관계자는 “활동지원제도 사각지대로 서비스를 못 받는 장애인이 늘어 지자체에 활동지원을 늘려 달라고 직접 요구하는 투쟁을 했다”며 “법이 지자체의 추가지원 확대를 가로막는만큼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회보장을 파괴하는 사회보장기본법의 개정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전장연은 지난해 8월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개정안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변경할 때 복지부와 위원회의 조정을 거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 의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도록 한 조항을 마치 중앙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해석해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장연은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2012년 8월부터 1천640일째 광화문 역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 그리고 장애인활동보조 수가 인상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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