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22 월 14:09
매일노동뉴스
노동이슈 정치·경제 사회·복지·교육 기획연재 칼럼 피플·라이프 안전과 건강 노동사건 따라잡기 종합 English
칼럼
"당신들의 투쟁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김형규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김형규  |  labortoday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2.1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김형규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지난해 10월 이후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50~60대 남녀 10여명이 점심시간에 병원 로비 벽면에 바짝 붙어 말없이 서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들의 손에는 “환자들과 병원을 위해서 일해 온 청소노동자들에게 해고협박, 노조탄압 웬 말입니까?”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져 있다.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태가비엠이라는 용역회사를 통해 부려 왔다. 이 같은 간접고용 방식을 택할 경우 원청은 입찰단계에서 최저가를 제시하는 용역회사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크게 아낄 수 있다. 용역계약을 통해 실질적으로 청소노동자들의 업무시간과 장소, 업무내용을 정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청소용역의 소비자일 뿐이라며 노동관계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다.

당연한 귀결로서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은 늘 최저임금 수준으로 정해지기 마련이다. 노동법이 제공하는 보호는 언감생심이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지난해 상반기 시급은 6천30원으로 법정 최저임금과 정확히 같다. 이들은 1~2년마다 한 번씩 용역회사가 교체되더라도 관행적으로 고용이 승계돼 10여년째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같은 근로조건에서 일했다. 하지만 진정한 사용자라 할 수 있는 세브란스병원을 사용자라 불러 본 적 없고, 병원측에 무언가를 요구해 본 적도 없다.

지난해 6월 병원 청소노동자 130여명이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에 가입했다. 결단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임금도 좀 올리고 다른 근로조건도 개선해 사람답게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은 노조 출범 직후부터 탈퇴를 회유하거나 압박했다. 협력적인 다른 노조를 이용해 지부 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다. 이런 사실은 병원과 태가비엠이 날마다 주고받은 업무일지를 통해 밝혀졌다. 거기에는 “노노대응 유도 바랍니다” “법적 조치 진행 바랍니다” “주말·휴일 조합원 동향 파악 집중 부탁드립니다” 같은 병원측 지시사항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매일노동뉴스 2016년 10월10일자 기사 “하청노조 깨려고 ‘친필 업무지시’ 내린 신촌 세브란스병원” 참조)

청소노동자들은 몹시 슬퍼하고 크게 분노했다. 미화원이라고 무시당하고 용역노동자라서 직원 취급을 받지 못했어도 ‘내 직장’ ‘우리 병원’으로 생각해 온 세브란스병원이 이런 일을 벌일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해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면담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은 시위뿐이라고 생각했다. 환자와 직원들의 통행을 가로막거나 병원 업무에 최대한 방해를 주지 않는 침묵시위를 결정했다.

병원은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지부 간부들을 상대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용역회사 청소노동자들이 로비를 점거하고 업무를 방해하고 있으니 이를 금지시켜 달라는 취지였다. 위반행위 1회당 100만원씩 지급하도록 해 달라는 간접강제신청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은 세브란스병원 건물 내에서 확성기 등을 이용해 소음을 야기하는 행위는 금지했다. 반면 병원 건물 및 부지 경계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 농성·시위하는 행위,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피켓을 들고 있는 행위를 금지시켜 달라는 신청은 기각했다. 간접강제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소노동자들이 비록 용역회사 소속이지만 병원에서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이상 병원도 업무에 현저한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는 노조활동을 마땅히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회사에서 노조활동을 할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천만다행한 결정이었다. 만에 하나 병원의 신청이 상당 부분 인용됐더라면 청소노동자들은 크게 절망했을 것이다. 노조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했던 희망과 바람에 살짝이나마 어둠이 드리웠을지 모를 일이다.

재판 과정에서 병원측이 환자와 보호자들이 시위로 인해 불쾌감과 불편함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자, 청소노동자들은 로비를 지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해 응원 문자메시지를 부탁했다.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기꺼이 문자메시지를 보내 줬다. 

"힘내세요. 일한 대가 정당히 받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저희 어머님도 청소일 하세요. 항상 새벽부터 나가서 열심히 하시는데…. 생각나서 더 맘이 아픕니다! 기운 내세요."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당신들의 투쟁에 많은 이들이 함께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김형규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뉴스
1
노동부 “세스코 2015년 최저임금 위반”
2
인천공항 감전사고 “공사에 직접 고용됐다면 안 났을 사고”
3
대통령이 당장 할 수 있는 노동정책 세 가지
4
현대중공업 '임금삭감' 노사갈등 올해도 되풀이
5
취임 13일 만에 연차휴가 낸 문재인 대통령
6
포스코 협력사, 임단협 중 난데없이 정리해고 통보
7
씨티은행 노사, 이번엔 여성 노조간부 폭행 논란
8
[연속기고-구의역 사고 1주기에 돌아본 한국 사회] 구의역 사고 1년, 김군을 기억하며
9
노동법학자들 문재인 정부에 '노동정책 개선 속도전' 주문
10
민주노총의 사회적 총파업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아이디등록 요청 | Subscribe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10길 20 (서교동, 2층)  |  대표전화 : 02)364-6900  |  팩스 : 02)364-6901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운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일간) 문화가00272   |  발행인 : 박성국  |  편집인 : 박운 | 1992년 7월18일 창립 1993년 5월18일 창간
Copyright 2011 매일노동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