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사퇴하자 득실을 따지는 기사가 봇물을 이룬다. 이런 류의 기사는 “~것 같다” “점쳐진다” “알려졌다”는 서술어를 달고 있다. 추측기사다. 누구의 추측일까. 정치권, 정치 평론가들, 여론조사기관? 아니다. 기자 스스로의 추측이다. 날마다 지면을 채워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처지라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그러나 추측은 억측을 낳고, 억측은 몇 달 전 벌어진 미국 대선 예측보도만큼 엉망이 된다.

여기에 한국은 특수성이 하나 더 끼어든다. 기자의 중구난방 추측에 슬쩍 신문사주의 욕심이 곁들여져 여론 왜곡이 일어난다.

눈 가린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마식 보도는 여론조사에 가장 크게 의존한다. 2일자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반기문 지지 20%는 황교안, 13% 유승민으로'가 대표주자다. 여론조사에 기댔지만 속내는 반기문 사퇴 이후 보수층 단결을, 반대로 야권후보 분열을 주문한다. 아니 희망한다.

같은날 중앙일보 5면은 그런 생각을 더 솔직하게 반영했다. 5면에는 딱 두 개의 기사가 실렸다. 머리기사는 '다크호스 안희정, 전 지역·연령서 지지율 2~3배 약진'이라는 제목으로 야권의 안희정을 문재인의 대항마로 부각한다. 나머지 기사는 '반기문 빠진 대선판, 황교안 여권 주자로 급부상'이란 제목으로 여권에 황교안으로 단결하라고 주문하는 듯하다. 중앙일보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보수신문이 황교안을 띄운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탄핵 절차에 들어간 대통령 대신 권한대행을 맡은 황 총리가 대선관리는 안 하고 선수로 뛰어들면 대선 기간 중엔 부총리가 다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야 하는데 전시상황도 아닌 나라에서 이런 게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 좀 하고 썼으면 한다. 기자들이 대선후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받아 적다 보니 국민 일반의 정서는 아랑곳없다.

25년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선거취재를 경험한 오동명씨의 <당신 기자 맞아?>라는 책에 나오는 1992년 대선 때 기자들의 모양새를 들여다보자.

92년 대선 때 창원 유세에서 정주영 후보의 통일국민당은 그 많은 기자들에게 촌지를 나눠 줬다. 정치부 기자들에겐 1인당 200만원씩, 사진기자에겐 1인당 50만원씩 배당했다. 연합뉴스 한 사진기자가 그 돈을 돌려주면서 촌지 수수가 알려졌다. 기자협회보에 조그맣게 보도됐을 뿐 어떤 언론도 쓰지 않았다.

92년 대선 때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 첫 유세지인 강원도 태백에 따라온 사진기자들은 저녁에 모여 “정치부 기자들은 호텔에 재우고, 사진기자들은 여인숙 같은 여관에 처박아 넣었다”고 성토했다. 당시 현장에는 기자가 족히 100명은 넘었다. 사진기자를 대표한 간사 선배가 "사진기자들 몫으로 200만원을 받았다"고 하자 "사진기자가 몇 명인데 고작 200만원이냐"며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사와 다른 두 명의 선배가 나눠 가졌다. 이 추잡스런 사건도 기자협회보에 실렸다. 돌려주기로 하고 제 주머니를 채운 셋은 나중에 사진부장에 이사보까지 승진했다.

92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가 지리산 하동에서 열린 청년모임에 참석했다. 사진부 기자들과 소수의 정치부 기자가 서울에서부터 따라붙었다. 지리산 산속 기자들 숙소는 허름한 민박집의 큰 방이었다. 그곳에서 10여명이 자야 했다. 기자들이 항의하자 대선캠프는 곧바로 광주에 숙소를 마련했다. 무등산 자락에 새로 지은 관광호텔이었다. 당 간부 소유라 가능했다며 함께 온 국회의원이 오히려 미안해했다. 1층 바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하고 주무시란다. 한 기자는 “이러니 기자들이 김대중 후보를 따라오려고 하겠습니까. 변변한 숙소 하나 준비해 놓지 않고 있으니”라고 말했다.

25년이 지난 오늘 기자사회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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