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고양일산우체국에서 집배원들이 택배물품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한 집배원이 택배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설 선물상자가 가득 담긴 파레트를 옮기고 있다. 무게가 평상시 대비 두 배 이상이라고 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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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눈이 제법 쌓였다. 발목까지 쌓인 눈에 유난히 한숨을 깊게 내쉬는 이들이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일산우체국을 찾았다. 동도 트기 전 캄캄한 새벽, 물류팀과 집배팀이 있는 우체국 건물의 2~3층은 벌써 형광등 불빛으로 환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달 나서

“오늘 날을 잘못 잡으셨는데….”

집배 업무를 총괄하는 물류팀장의 말이다. 안 그래도 분주한 설 특별소통기간, 쌓인 물량과 창밖에 거세게 날리는 눈발을 보며 한숨 짓는다. 그는 “이륜차 사고 위험이 크면 배달을 못 나가게 한다”며 “오늘 배달 여부가 불투명해 다들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집배팀이 있는 건물 3층과 연결된 주차타워에서는 고양우편집중국에서 온 택배물품 분류가 한창이다. 배달 동별 물품을 정리하느라 분주히 오가는 집배원들의 표정이 어둡다.

“오늘 나갈 수 있는 건가?”

“나가 봤자 물량 그대로 다 싣고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륜차로 배달하는 집배원들은 날씨에 민감하다. 눈이라도 오면 나가면 나가는 대로, 못 나가면 못 나가는 대로 힘들다. 운전하는 내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 피로감은 두세 배가 된다. 그렇다고 반나절이라도 배달이 중단되면 물량은 그대로 쌓인다. 배송 물품이 밀리더라도 누가 대신 배달해 주는 게 아니다. 일이 밀리면 일요일까지 출근해 배달해야 한다. 배달 일정이 지연되면 민원이 접수될 확률만 높아진다.

▲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러웠다. 오토바이 짐칸에 택배 상자가 가득하다. 정기훈 기자
▲ 새벽에 내린 폭설로 대기 상태가 길어졌다. 우체국 인근 지역 배달을 맡은 집배원이 우편물 상자를 들고 배송지로 걸어가고 있다. 난생처음이라고 말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폭설기·폭우기, 책임 있는 지침 있었으면….”

우체국 내부는 건설현장 못지않게 ‘안전’ 문구로 가득하다. 집배원 자리마다 “안전사고 제로화” 표가 붙어 있다. 지난 2005년 이후 10년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75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사망자수는 같은 기간 현대건설·대우건설·GS건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 지난해만 해도 집배원 6명이 순직했다.

이날 오전 10시가 넘어 배달을 나가도 좋다는 지침이 떨어졌다. 집배원들은 일제히 이륜차에 설 선물 박스를 칭칭 동여매고 배달 준비에 나섰다.

뒤에 짐을 한가득 싣고 떠나는 한 집배원이 이륜차를 세우고 기자에게 문자를 하나 보여 줬다. “방어운전 철저, 폭설로 배달에 어려움이 있으면 배달 중지.” 그날 아침 우정사업본부장 명의로 온 문자였다. 익명을 요구한 이 집배원은 “안 나가면 처리해야 할 물량이 쌓이기 때문에 집배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갈 수밖에 없다”며 “위에서 관리자들이 지침을 명확하게 내려 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해마다 똑같이 반복돼요. '배달에 어려움이 있으면'이라는 문구도 굉장히 애매하잖아요. 본부 지침에 따라 우체국에서 제대로 판단을 내려 줬으면 하는데…. 이렇게 나가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집배원 책임이에요.”

이날 비보가 전해졌다. 지난 18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에서 1톤 트럭과 이륜차 충돌사고가 벌어졌다. 사고를 당한 집배원은 이날 새벽 결국 숨을 거둿다.

▲ 고양일산우체국 오현암 집배원이 한 오피스텔 건물에서 등기우편물과 택배를 배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오현암 집배원이 건물 계단을 뛰어내려오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우리 아니면 누가 우편서비스 하나”

장시간 노동을 한다고 알려진 집배원들의 근무시간이 초장시간으로 치닫는 때가 이른바 특별소통기다. 특별소통기는 1년에 2~3차례 있다. 설·추석 명절과 선거기간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달 16일부터 26일까지 11일간을 설 우편물 특별소통기간으로 정하고 완벽한 배달을 위해 비상근무체계에 돌입한다”며 “이번 설명절 우편물은 약 1천250만개로 평소의 1.3배가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간관리자인 황학구(58) 집배2실장은 특별소통기 때는 오전 5시에 출근해 오후 11시까지 근무한다. 하루 근무시간이 18시간이나 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이다. 황 실장은 “설 소통기 때 더 바쁜 것은 우체국이 보편적 서비스를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택배회사가 바쁠 때는 일반 고객의 픽업 요청을 받지 않고 돈이 되는 기업고객만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집배원은 공무원이지만 공무원답지 않은 공무원”이라며 “집배원들도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돌연사든, 사고든 결국 인력 문제”

<매일노동뉴스>는 이날 오현암(35) 집배원의 뒤를 쫓았다. 오현암 집배원은 일산동구 백석동을 관할하는 독수리팀 팀장이다. 일산우체국에 있는 집배 11개팀 이름은 솔개·송골매·도요새 같은 새 이름이다. 파랑새·참새·비둘기같이 다소 앙증맞은 팀명도 있다.

오 팀장의 관할 구역은 50층대 아파트 밀집 지역이다. 매일 새벽 싣고 나갈 물량을 점검하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아파트 건물 안에서 등기·소포·택배를 쉼 없이 나른다. 오 팀장이 담당하는 Y타워에는 2천500여 세대가 입주해 있다. 백석동 관할 세대가 2천500세대 늘어나면서 바뀐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입주가 시작됐는데 인력은 반년이 지난 이달 초에 1명이 충원됐다. 그 전까지는 팀원들이 본인 관할지역에 더해 추가로 나눠서 배치돼 일했다.

일이 많아지니 사고도 늘었다. 최근 한두 달 사이 팀원 12명 가운데 3명이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다친 팀원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며 “아침에 각자 구역으로 흩어질 때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오늘 꼭 살아서 보자고 팀원들과 얘기한다”고 말했다.

오 팀장은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큰 아이와 세 살배기 막내까지 아이가 셋이다.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하루뿐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토요 택배가 시작되면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한나절 줄었다.

“뇌출혈 같은 돌연사도 그렇지만 교통사고 역시 여유가 있다면 훨씬 줄어들 거예요. 동료들은 지금 나가는 구역의 딱 반절 정도 구역만 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요. 결국 인력 문제인 거예요. 인력이 충원돼서 좀 더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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