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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야 할 블랙리스트의 나라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블랙리스트.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배제다.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주류사회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호불호, 즉 좋아함과 싫어함은 인간과 동물 모두의 내면에 깊이 자리하는 자연스런 심리상태일 수 있다.

호불호는 주관적으로 합리적이기도 하고 또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문제는 권력과 자원 그리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의 호불호 표출방식에 있다. 권력자가 자신의 호불호를 정당하지 않은 원리를 가지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출할 때 그것은 불법행위가 된다. 만일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정체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정부가 그런 일을 했다면 그 어떤 식으로든 차별당하지 않고 의사표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심대히 침해한 것이다.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성향을 분류해 정부 지원을 받을 자와 받지 말아야 할 자로 구분해 후자를 목록화해 실행했다는 것이다. 친야 성향을 표출했다든지, 세월호 사건과 여타 이슈를 놓고 정부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든지 하는 민주공화국의 국민 기본권상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는 행위를 했음에도, 그것이 정부를 비판한 내용을 지닌 것이라면-그냥 눈으로 살짝이 아니라-리스트에 기재되는 식으로, 말하자면 '찍혔던' 것이다.

한국처럼 정부 주도로 정책이 형성되고 집행되는 경향이 강한 나라에서 정부에게 '찍힌다'는 것은 자신의 활동에서 크고 작은 기회의 치명적인 상실을 의미한다. 게다가 어떤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사용자와 체결해 노동법상 해고되지 않을 보호를 받는 종속적 근로자 신분이 아닐 가능성이 큰 문화인들과 예술인들의 경우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이미 '뜬' 사람이든 아니든, 미래의 커리어는 암담해진다.

문화예술은 작가가 성역 없이 폭넓게 그리고 최대한 참신하고 창의적으로 더불어 아름답게 세상을 예술작품 안에 담아 형상화해 세인들과 그 작품을 놓고 공감과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정부가 잘못했다고 판단하는 일이든 잘했다고 판단하는 일이든, 예술은 자율적으로 그것을 판단해서 작품의 소재로 삼아 일정하게 형상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특정 정부에 대한 비판 자체가 목적인 예술이 있을까. 정부의 통치행위보다 예술가의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한 성찰의 인식 틀은 비교할 수 없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예술은 예술이 아닐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그러한 통찰과 가치를 특정 정부에 비춰 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해당 정부의 치부와 어두운 면까지 들춰 내며 그것을 예술에 담거나 작가의 발언을 통해 드러낼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어떤 예술가의 작품을 특정 정부에 대한 비판성분 함유 정도를 따져 그 가치를 판단하고 등급을 매기고, 향후 작품기회를 줄지 말지를 결정한다면 작가 입장에서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까. 작가의 예술성을 사랑하는 대중 역시 그 황당한 잣대질에 아연실색할 일이다.

한 사회에서 적어도 학문·예술, 언론의 영역만큼은 비판이 생명인 세계로 공인받는다. 그 비판의 장에서 하는 활동은 정부든 기업이든 누구든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남겨 둬야 한다. 비판이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권력자가 자신을 향하는 비판을 용납하지 않고 국민 입에 재갈을 물린다면 이미 그 사회는 중증 퇴행의 길을 가기 시작한 거다. 누군가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은 학문·예술·언론의 장에서 보장돼야 한다.

1948년 남북 독자정부 수립이 분단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면 이제 한반도가 분단된 두 나라에 의해 다스려진 지 어언 70년이 돼 간다. 분단이 사람이라면 70대 노인에 접어든다. 이 말은 분단 이전 한반도를 생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이미 기성세대를 넘어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돼 있다는 것이다.

그 70년간 사회적 배제의 관행은 남한과 북한 정부 모두에 의해 활용돼 왔다. 특히 남한에서는 70년의 80% 이상을 "정부 비판=친북=빨갱이=죽일 놈"이라고 하는 폭력적인 등식을 적용해 정부 비판적인 이들을 사회적으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통치행위가 자행돼 왔다. 그 시기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체계적으로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배제시키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가치에 위배되는 범법행위를 정부 스스로 자행했다. 여당과 사법부마저 그에 동조하며 공모적으로 헌법정신을 스스로 유린하고 파괴하기도 했다.

국정농단을 수사하기 위해 출범한 특별검사의 블랙리스트 수사가 정점에 달해 있다. 이미 그와 관련한 물증·심증·진술이 상당히 수집됐고 일부는 공개됐다. 역사는 이 정부를 블랙리스트 시대로, 말하자면 민주공화정의 새로운 암흑기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정부가 창조경제를 말했다니. 조작된(manupulated) 창조, 통제된(controlled) 창조라고 하는 새로운 형용모순의 사회를 꿈꿨던 것일까.

시대착오적인 이러한 통치행위야말로 국민통합을 가로막고 국민의 다양한 경제·사회 활동을 위축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통치행위다. 뿐만 아니라 그 여파는 경제적 가치창출 기회와 일자리 기회 모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현재와 미래 위정자들 모두가 깊게 각인하는 계기로 삼아,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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