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KB국민은행 사측 관계자였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보도한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당선 무효 논란 일단락될까' 기사를 잘 봤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다음 말은 “그런데”였다. 기사 내용이 법원 판결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니 문장 일부를 삭제해 달라는 요구였다. 구체적으로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피고가 법적 다툼을 끝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가처분이 인용됐을 경우 피고가 본안소송까지 나설 의사가 없다는 것을 법원이 미리 알면 가처분을 인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었다.

논리의 비약이 심했다. 이해 당사자도 아니라서 거절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차기 위원장 선거에서 1차 투표와 결선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박홍배씨는 지난달 지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선무효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곧장 선관위를 피고로 서울남부지법에 당선무효취소 가처분을 제기했다. 이달 말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는 박씨와 지부 선관위가 이해 당사자로 등장한다. KB국민은행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위원장 선거는 원칙적으로 노동조합 내부 활동이다. 사측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날 KB국민은행한테서만 전화가 왔다. 그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 말과 요구를 담은 연락이었다.

전화 한 통으로 확실해진 것이 있다. KB국민은행이 박씨가 차기 위원장이 되는 것을 무척이나 꺼린다는 점이다. 그것을 공공연하게 얘기할 만큼 무지하거나 뻔뻔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박씨의 당선이 확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작지만 행동(기사 수정요구)에 나선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이 많았던 선거였다. 박씨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사측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회사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당선이 무효화한 것도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의 노조 선거 개입 의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KEB하나은행지부 공동위원장 취임식에서 있었던 씁쓸한 해프닝이 떠오른다. 행사는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1층 로비에서 열렸다. 회사는 지부의 강당 사용 요청을 불허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사측이 특정 후보를 지원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덕분에 취임식은 파업을 앞두기라도 한 것처럼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회사의 옹졸한 행동을 비판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이취임식이 아닌 취임식이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이 공동위원장에게 지부 깃발을 건넸다. 노조 위원장 선거는 그 어떤 선거보다 투명해야 한다. 회사보다 힘이 약한 노동자 대표를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사측이 털끝만큼이라도 개입해 버리면 안 하니만 못한 것이 된다. 박씨는 조만간 법원에 사측의 선거 개입을 입증할 증거를 제출할 예정이다. 한두 개가 아니라고 한다. 법원이 증거 효력을 인정하고, 널리 공개해 은행권의 노조 선거 개입 풍토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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