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해가 바뀌었다. 구속돼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반증했다. 1천만명을 훌쩍 넘긴 미증유의 촛불민심을 기득권층은 여전히 우롱하고 있다. 조기대선이 확정적인 올해 정세는 요동치겠지만 노동자 서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질지는 미지수다. 비정규직 문제처럼 정치쟁점화는 요란한데 정작 당사자의 현실은 바뀐 것이 없거나 더 나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퇴진과 탄핵만으로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한국 사회가 뒤바뀔 것이란 낙관은 위험천만하다. 경남 창원의 24세 전기공이 한 질문처럼 박근혜가 물러난다고 이 사회가 바뀔 것인지 의문을 표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거대한 수구기득권 세력은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올 정치적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지금부터가 진검승부다.

싸움을 이기기 위해선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사기와 조직력, 신뢰받는 지도부, 호의적 여론 등. 특정한 지도자가 없는 무혈 촛불항쟁은 초유의 집단지성과 생기 넘치는 활력으로 승리의 여러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국회의 탄핵 소추 가결까지 일사천리로 관철시켰다. 나 같은 사람의 소심한 우려를 기우로 만든 촛불시민들은 이제 적폐 청산과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던지는 질문 하나. 촛불항쟁은 반대와 저항을 넘어 제도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 마련까지 줄기차게 전진할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촛불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요구가 핵심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한국은 계급계층과 세대 간, 지역 간 균열과 단절이 극심한 다중 양극화 사회다. 노동자계급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조차도 다양한 양태로 분절화돼 이미 하나가 아니다. 노조와 노조 바깥의 미조직 노동자들 간 임금 격차는 돌이키기 어려운 양상으로 점증해 왔다. 평등사회를 만드는 핵심 기제가 돼야 할 노조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공장 공공부문 중심 민주노조운동이 사회발전의 지렛대가 아니라 걸림돌로 여겨져 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민주노조운동은 실기하면서 근본적인 혁신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지난해 극적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 국회라는 조건에서 혁명적인 촛불항쟁으로 새 국가와 사회 건설의 호기가 느닷없이 열리면서, 민주노조운동은 그간 미루거나 해결하지 못한 전략적 과제들을 새해 전력투구로 실천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받고 있다. 차별받고 고통받고 있는 다수 노동자들의 요구가 진정한 단결의 기초이자 민주노조운동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촛불시민의 대다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다. 촛불항쟁은 노동자들의 불안하고 피폐화된 삶이 개선되는 정치적 기회가 될 때 올바르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노동현장에서 쌓인 폐단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권력구조가 바뀐들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구조조정의 최대 희생양이 된 조선업종 하청노동자들을 보라.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문제가 중심으로 부각돼야 한다. 성과퇴출제 폐기도 중요한 현안이지만 촛불노동의 핵심 요구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옮겨 가야 한다. 그래야 다수 노동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노동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농민·빈민·철거민·여성·청년학생·장애인·성소수자·종교인·양심적 지식인 등 수많은 민중이 남한자본주의 체제의 슈퍼갑인 재벌자본을 구심으로 한 지배 카르텔 아래 자행돼 온 착취와 수탈로 신음하고 있다. 비루하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열망이 끓어오르는 지금 박근혜 퇴진 이후 각자가 그리는 세상은 그들의 일상을 바꾸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결국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 민중이 함께 손 맞잡아야 세상을 진짜로 바꿀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작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계급적 단결로 전체 노동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교두보가 될 때 촛불항쟁은 다시 전진해 일터와 마을로까지 번져 갈 수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다른 사회적 약자와 폭넓게 연대하면서 남한자본주의 체제를 다른 사회로 뒤바꿀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갈 수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시민을 넘어 피지배자이자 피억압자인 노동자 민중이 역사와 사회변혁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승리하는 2017년이 되길 바라며, 이소선 어머니께서 생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 당부로 새해소망을 대신한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가 안 돼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항상 뺏기고 살잖아요. 이제부터는 하나가 돼서 싸우세요. 하나가 되세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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