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지난해 11월 말, 겨울의 초입이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지회에 법원 우편물이 하나 날아들었다. 원청이 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서였다. 지회가 한국지엠 근로자도 아니면서 창원공장에서 집회를 하고 사무실을 방문하는 식으로 업무를 방해하고 있으므로,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하거나 사무실이 있는 본관 2층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한국지엠 비정규직 5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확정했다. 한국지엠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응당 불법파견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지회의 대화요청조차 거부했다. 지회는 몇 차례 창원공장 본관 앞에서 집회를 갖고, 본관 2층에 있는 사무실에 항의공문을 전달하러 갔다. 한국지엠은 이를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하고, 법원에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제기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1주일이 지나자 이번에는 360여명의 비정규직에게 해고통보가 날아들었다. 이거로구나. 한국지엠은 비정규직에 대한 대규모 해고를 앞두고 지회의 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에 대비해 미리 형사고소하고, 집회와 사무실 출입을 금지해 달라는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가처분 재판은 시작부터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항의공문을 전달하러 가면서 1명만 가면 되지 왜 여러 명이 들어갔느냐는 판사의 질문에서부터 말문이 막혔다. 법원이 이렇게까지 노동조합 활동을 모를 수 있을까. 심지어 통상적인 가처분 사건에서 주어지는 자료제출 기한까지 이 사건에서만은 부여할 수 없다고 했다.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고 그래도 판단은 법리적으로 할 것으로 믿으며 최선을 다해 서면을 준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지엠이 신청한 가처분에는 지회가 하지도 않은 일도 마구잡이로 금지해 달라고 쓰여 있었다. 회사는 지회가 사내집회를 하면서 “북·장구·꽹과리를 사용하여 70데시벨 이상의 소음을 발생시켜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금지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지회가 북·장구·꽹과리를 사용했다거나 소음을 발생시켰다는 자료는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회는 꽹과리 등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앰프 장비가 열악해 70데시벨을 초과하는 소음을 발생시켰는지도 의문인 상황이었다. 설사 70데시벨을 넘었다 한들 그게 무슨 잘못이라는 말인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소음기준은 75데시벨이다. 이처럼 한눈에 봐도 말이 안 되는 신청을 했으니, 적어도 이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심문 후 2주 만에 나온 법원의 결정은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창원공장 본관 앞에서 꽹과리·북·장구 등을 이용해 집시법상 기준(소음 75데시벨)을 넘는 집회를 하지 말라는 취지의 결정을 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사용한 적도 없는 꽹과리 등을 금지내용에 떡하니 집어넣은 것도 황당한데, 소음을 발생했다는 자료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소음 금지를 명하다니. 이런 식이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나를 때리지 말라”는 금지가처분을 넣어도 인용해야 할 판이다.

그 외에도 이상한 점은 많았다. 법원은 공장 내 생산라인을 돌아다니며 쟁의행위 참가를 독려하는 피케팅을 전개한 것도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쟁의기간에 참여를 독려하는 피케팅 활동이 적법한 노조활동에 해당한다는 것은 그간 여러 판결을 통해 확인돼 왔다. 게다가 지회의 피케팅이 작업 중인 노동자를 직접 방해했다는 사실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케팅 자체를 막으려는 원청 관리자들과 몇 차례 실랑이가 있기는 했다. 적법한 쟁의행위인 선전활동을 방해한 관리자들이 불법행위를 한 것인데도 법원은 역으로 지회 활동을 불법으로 파악했다. 법원이 쟁의행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라도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든다.

이번 재판 과정과 결과를 지켜본 지회 간부들은 법원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됐다. “법은 가진 자의 편”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눈앞에서 현실화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법원은 회사 편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파업 동력을 상실시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반박할 말을 내놓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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