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천만명을 넘어섰다. 2016년 12월31일, 2016년의 마지막 날에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서 10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드디어 이날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이 1천만개째 밝혀졌다고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밝혔다. 1천만명을 넘는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위해 촛불로 광장에 쏟아져 나와 행동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촛불시민들은 최순실 일당과 공범자들을 처벌하도록 했다. 그것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시키기 위한 탄핵의 심판대에 세웠다. 지칠 줄 모르고 토요일이면 광장에 모였다. 평화적이었지만 단호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박근혜의 대통령직을 박탈하게 될 것이라 낙관하면서 ‘조기 탄핵’ ‘박근혜 구속’, 나아가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마침내 대한민국의 광장에서 시민들은 촛불 하나로 최고권력을 몰아내는, 승리를 앞두고 있다.



2. 촛불시민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오늘 1천만개가 넘는 촛불로 타오르고 있는, 이 위대한 시민의 항쟁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시민혁명’, 특정한 계급과 계층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시민으로 참여하고 있는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촛불’시민혁명, 유혈이 낭자한 폭력투쟁이 아니라 촛불을 든 평화적인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표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구호도, 박근혜의 농업정책에 반대하는 농민의 구호도 모두 ‘박근혜 퇴진’이라는 거대한 외침 앞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이 나라에 등장한 지 10여년인 촛불집회지만 오늘처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압도적인 규모로 타오른 적은 없었다. 민주노총 주도의 민중총궐기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일반 시민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박근혜 퇴진 집회가 되면서 종전의 성격을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그렇다. 오늘 이 나라의 광장에서 촛불은 노동자의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는 간신히 성과연봉제 폐지 등 노동개악 반대의 외침이 들릴 뿐이다. 아무리 평가를 해 봐도 거대한 시민의 외침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는 없다. 노동운동은 단지 촛불의 광장에서 노동의 구호를 박근혜 퇴진의 구호에 섞어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 노동의 구호가 촛불시민들의 분노의 함성으로는 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민주노총 등 퇴진행동 참여 노동단체조차도 오늘 촛불광장에서 노동의 구호는 조심스럽다. 자칫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이 꺼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지금 이 나라에서 촛불시민혁명은 전개되고 있다.



3. 그런데 정말 조심스러운 것일까. 노동의 구호를 내세웠다가는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반동의 바람에 촛불이 꺼질까 봐 노동운동은 조심스러운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아직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략이든 전술이든 뭐가 됐든 이를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저 근대시민혁명의 세계사에서 시민혁명 이후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우리의 경우도 87년 6월 항쟁 이후 7·8·9월 노동자대투쟁이 전개됐던 것처럼 그렇게 이 촛불시민혁명에 이어 2017년에는 노동운동도 노동자권리를 위해 혁명적으로 폭발할 것이라고 기대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차갑다. 이상하게도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뜨겁게 분노하고 있다고 보이지가 않는다. 6월 항쟁의 1987년에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에서 벗어나면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민주노조로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이 됐는데 지금 이 나라에서는 아니다. 노동운동·노동조합에 대한 노동자의 기대도 그때만큼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노총 등 노동자단체가 조직돼 있건만 노동자의 기대는 혁명적으로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 이 나라의 광장이 노동의 촛불이 타오르지 않고 시민의 촛불로 타오르고 있는 것은 노동운동이 조심스러워서가 아니라 노동의 촛불로는 수백만개를 밝힐 수가 없어서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촛불집회를 연 민중총궐기의 노동운동이었다고 자부해서 말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4. 따지고 보면, 오늘 촛불 광장에서 시민의 대다수는 노동자였다. 저 근대시민혁명의 광장에서, 87년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당시보다 더 많은 노동자였다. 촛불집회장에서 노동자와 그 가족이 빠져나간다면 결코 광화문광장은 촛불의 바다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 그들은 촛불집회에서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박근혜 퇴진을 위해 촛불을 들고 행동했을 뿐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는 뜨겁게 광장에 쏟아져 나와 수백만으로 행동을 하지만 노동자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퇴진행동이 신고한 집회에 자발적으로 나와 기꺼이 하나의 촛불이 돼 주는 그들이 노동자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행동할 뿐, 자본과 권력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고 있지 않다. 여전히 이 나라 노동자는 법적으로만 노동자일 뿐이다.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노동자는 아니다. 법은 노동조합을 불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 등 노조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외쳐 왔다. 그런데도 10%의 노동자만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다. 사용자 자본과 이에 편드는 권력에 맞서 노동조합 할 자유가 제한을 받고 있어서라고 변명할 수만은 없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라면 이를 무릅쓰고 조합원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하다. 노동자가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의 보장을 알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보장받을 노동자권리가 노동조합이 쟁취하고 있지 않다고 이 나라 노동자는 여기고 있는 것이다. 노조운동·노동운동은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그것을 오늘 노동자를 촛불광장의 주인으로 세우는 데까지 이 나라 노동자운동은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5. 민주공화국은 헌법을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권력자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나라는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촛불시민이 돼서 행동한 촛불집회와 그 뜻을 받은 국회의 탄핵 소추,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심판하고 있다. 그러니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고 그걸 확인한 촛불시민혁명이라고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면 민주공화국의 승리를 노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인가. 그것이 다인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너무 가볍다. 봉건체제를 폐지한 것도 아니고 이미 건설했던 민주공화국을 훼손한 권력을 민주공화국의 법질서에 따라 심판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공화국에 새로운 헌장을 추가한 것도 아니다. 다시 어제의 민주공화국이라고 재확인하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촛불시민‘혁명’이라고 위대하다고 부르겠지만 혁명이라고까지 말을 할 수 있는 시민의 행동은 아닌 것이다. 이 나라에서 촛불집회는 이제 1천만명을 넘어서 나아가고 있다. 탄핵결정이 있기까지, 나아가 공범자 부역자의 처벌, 적폐 청산까지 촛불은 규모가 얼마가 될지 몰라도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인 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내용을 채워 넣을 수 없다. 지금 촛불시민혁명은 기껏해야 과거 시민혁명의 재현일 뿐, 민주공화국의 미래일 수는 없다. 냉정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6. 노동운동은 민주공화국에 새로운 헌장을 쓸 수 있다. 노동운동은 민주공화국의 질서를 파괴한 권력의 교체만으로 노동자권리를 위한 자신의 목적이 실현되지 않는다.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끊임없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내용을 민주공화국에 새로이 채워 넣을 수밖에 없다. 그것으로 민주공화국은 어제의 것에 머물지 않고 새로워질 수가 있다. 이미 촛불시민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와 그 가족이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에서 노동의 새로운 헌장을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압도적 다수에 의해서 쓰게 되는 민주공화국의 헌장이라면 폭력과 파괴로 새기는 혁명선언문이 아니라 평화적인 인권선언문으로 공포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는 촛불시민을 넘어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거대한 규모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내일은 노동자의 것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의 일일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