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국회의원들이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알아?” 추위를 피해 들어온 찻집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어, 작년 아니었나?” 이어지는 대답, “아니. 올해 2월이었어.” 자리에 앉아 있던 5명이 일제히 "세상에" 또는 "대박" 혹은 "말도 안 돼" 따위의 탄식을 내질렀다. “생각해 보니 올해 4월에는 총선 캠페인을 하고 있었구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억들. 그렇게 우리는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2016년을 떠올렸다.

이제는 지난해라고 말하고 싶은 올해 5월 강남역 사건이 있었고, 같은달 구의역 사고가 벌어졌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비슷한 시기에 추모의 시간이 많았다. 6월에는 시간에 쫓겨 햄버거를 배달하던 배달노동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국화꽃과 포스트잇, 때로는 피켓과 플래카드와 함께했던 시간들이다. 그로부터 두 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월호 참사 2주기였다.

9월25일에는 317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백남기 어르신이 영면했다. 경찰과 대치하던 서울대병원의 아스팔트 바닥은 너무 차가웠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강연이 기억나는데, 주제가 ‘고통에 반응하는 윤리’였다.

7월16일 새벽 3시30분께에는 2017년 최저임금이 6천470원으로 결정됐다. 그러고 보니 곧 전국의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많을 때는 하루에도 몇 건씩 사무실로 노동상담 전화가 걸려왔고, 방문상담도 요청받았다. 대개는 주휴수당이나 최저임금을 못 받은 임금체불 사건이었다. 내가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건 일터에서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리는 사례들이다. 경제적 손실은 조금의 용기와 준비, 그리고 주변의 도움이 있다면 권리로서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순간순간 쌓여 가는 모멸과 상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서비스 노동자 4만4천명의 임금 84억원을 체불한 이랜드 사태를 보며 노동의 존엄을 향한 우리의 투쟁이 얼마나 깊게 이뤄져야 하는지 확인한다.

내가 2016년에 접한 통계 중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공무원시험에 관한 자료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구직자가 25만명에 육박한다. 지난 5년간 꾸준히 늘어 왔다. 2015년 기준 4년제 일반대 졸업자(32만명)와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임금과 고용안정성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 때문에 청년들이 공무원시험에 몰린다는 진단은 전형적인 오해이자 왜곡이다. 공무원시험 준비에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면 공정한 취업기회에 대한 청년들의 간절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인맥이 없어도, 부모의 경제력과 압도적인 스펙이 없어도, 성실한 준비와 노력을 통해 공정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 기회가 공무원시험 외에는 거의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에 정당화할 수 없는 격차와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벌어졌던 2016년의 달력을 넘기며, 새해에 보내는 나의 바람을 적어 본다. 2017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노동에 정의가 깃들기를 바란다. 질투와 분노, 멸시의 감각을 넘어 서로에게 건넸던 촛불의 온기가 내년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2016년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 온 우리 모두의 삶에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전한다. 서로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의 순간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31일과 다음달 1일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건강한 모습으로 2017년을 맞이하자. 해피 뉴 이어.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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