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축구평론가

형법 제260조1항은 ‘폭행죄는 사람의 신체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신체’는 일반적으로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격적인 면도 포함된다. 이것이 법의 해석이다. 따라서 언어 폭력, 즉 ‘말로써 비인격적인 희롱을 하거나 욕설·협박 따위를 하는 일’도 당연히 폭력이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더러 스포츠 교육이나 현장에서 발견되는 지도자나 상급생들의 거친 욕설이나 비인격적인 야유가 ‘사랑’의 이름으로, ‘훈육’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스포츠 현장은 물론 학생선수들이 생활하는 ‘교육’의 자리에서도 폭력적인 일들이 거듭 발생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국가인권위원회(2010년) 조사에 따르면 운동부 폭력은 주로 선배들에 의해 이뤄지며, 코치나 감독이 다음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코치나 감독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다기 보다는 일종의 위임된 폭력으로, 그들의 물리적 권한을 ‘선배’들에게 이양한 경우가 많다. 보다 고도화된 폭력 질서라고 할 수 있다. 폭력을 가하는 이유로는 ‘훈련이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정신력 강화를 위해’ ‘경기 결과의 문책’ 등 소위 ‘교육적 목적’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체벌이나 기합 외에 신체적인 폭행도 가해진다.

또한 홍덕기(2007년) 연구에 의하면 학생선수들은 독립된 시공간 속에서 일반 학생들과는 떨어져 ‘창살 없는 감옥’같은 생활을 한다. 때문에 동기, 선·후배 간의 교육적 관계맺음보다는 위계적-억압적 관계맺음에 익숙해져 있다. 학생선수들은 ‘교육’이 아닌 ‘훈육’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열문화에 따른 ‘위계적 관계’를 체험하며 구타와 폭력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승리지상주의에 편승한 학부모 역시 이를 묵인하게 된다.

이런 일들은 일반 사회에 적용하면 곧장 형법상 범죄로 처벌을 당할 수 있는 행위다. 공공연하게 상대방에게 욕설을 해 피해를 주는 것은 ‘모욕죄’가 되며 언어를 통해 어떤 다짐·부탁·행동 등을 암시하거나 강요하면 이 역시 형법상 공갈죄·협박죄에 해당한다. 이런 언어 행위를 길 가는 사람에게나 일반 직장의 후배 직원에게 했다가는 곧장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 스포츠라는 ‘특수성’이 이 모든 폭력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관습처럼 여겨 온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좀 더 세분해 살펴보자. 학문적 관점에서, 폭력은 크게 세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직접적(direct) 폭력, 구조적(structural) 폭력, 문화적(cultural) 폭력이 그것이다. 직접적 폭력은 말 그대로 폭력 행사자가 대상자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려는 의도로 행사된 행위를 말한다. 이는 그 가해자와 피해자가 확연하고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 뚜렷하며 그 처벌에 대한 판단도 어느 정도 명확하다.

왜 폭력이 관습처럼 됐을까

반면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구조적 폭력은 오랜 관습에 의해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특정 개인이 폭력을 자제하거나 저항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위계질서가 엄연한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이 구조적으로 지속되는 이유다. 한편 문화적 폭력은 그 물리적 행위를 ‘옳은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일을 말한다. 폭력 자체를 ‘문제가 되지 않는’ 일로 여기는 문화적 관습 말이다.

직접적 폭력은 가시적이고, 파괴적이다. 반면 구조적 폭력은 비가시적이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따라서 특정인을 지목해 그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수가 많다.

일반 사회에 적용하면, 직접적 폭력은 성질 나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노숙자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들 수 있다. 나쁜 짓이다. 이와 달리 구조적 폭력은 정부 정책의 실종이나 여러 사회적 원인들에 의해 수많은 노숙자들이 차가운 거리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인간 이하의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을 말한다. 직접적 폭력은 그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일단락되고 또 그 가해자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책임지면 되지만 구조적 폭력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또 어떤 방법으로 이 오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가 난감하다.

이를 스포츠계에 적용해 보면 어떤 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국 스포츠 교육이나 현장의 오랜 관습이나 낡은 관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런 양상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가해 당사자의 형사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지만, 실은 이러한 행위가 구조적인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폭력은 언어·이미지·생활 양식 등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 가하는 폭력이다. 근거가 희박한 이론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비정상적인 신념으로 학생이나 선수들에게 과도한 규율이나 복식이나 행동 양식을 요구하는 지도자들 역시 문화적 폭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프로스포츠 일탈 폭력의 구조화 증거

올해 한국 스포츠는 유난히도 비스포츠적인 일탈과 반스포츠적인 범죄가 발생했다. ‘박근혜-최순실-김종’으로 이어지는 국가 스포츠 정책의 파괴적인 양상, 뿌리 깊은 승부조작과 몇몇 선수들의 도박과 음주, 그리고 구단 차원에서 범죄를 도모했거나 적어도 구단이 고도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사건이 각 종목마다 발생했다. 특히 프로야구 NC다이노스 구단은, 소속 선수가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을 알고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음모의 시간을 번 끝에 이 선수를 신생 구단 KT위즈에 트레이드하면서 수익을 올린 사건은 명백한 조직 범죄라고 할 수 있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스카우트 업무 담당자가 본업과 전혀 상관없이 심판들을 매수한 것이 밝혀져 구속된 일도 충격적이다. 프로여자농구의 KEB하나은행 구단은 외국인 선수 첼시 리의 서류를 위변조 하다가 발각됐다.

스포츠 현장이, 감독들의 작전이 아니라, 검경의 합동 작전이 펼쳐지는 장이 된 해였다. 이것이야말로 폭력의 구조화이며 문화적으로 내면화된 양상이다. 특정 개인의 순간적인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그 분야의 오랜 구조적 힘의 형성에 의해 생성된 폭력 그리고 특정 집단 내의 문화적 폭력으로 강화된 것이다. 2016년 한국 스포츠는 고질적인 물리적 폭력에 더해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이 심화돼 그 어떤 가능성도 기약하기 어려운 해로, 비극적으로 종막을 고하게 됐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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