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호죽노동인권센터)

충북교육청 산하 학교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평일에는 오후 5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8시30분까지, 주말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다음 날 8시30분까지 24시간 경비업무를 하기로 중간관리업체와 계약했다.

중간관리업체가 도중에 바뀌는 일이 있었으나 주기적인 학내 순찰이나 교실과 복도 창문 닫기, 학교 출입문 개폐, 각종 행정서류 작성, 학교 내방객 응대나 시설물 관리 등 매일매일의 경비업무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관리업체가 바뀌었으니 근로계약서도 새로 작성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 그는 회사가 내미는 근로계약서에 별다른 의심 없이 서명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근로계약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출퇴근 시간은 전과 다름이 없었으나, 사업장에 머무는 전체 시간의 3분의 2 이상, 심지어 주말에는 4분의 3 이상이 휴게시간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출근한 지 30분 만에 1시간의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30분 근무 후 1~2시간 휴게’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경비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비업무를 수행하면서 사용자에게 근로계약서에 정한 휴게시간을 사용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 실제로도 전과 다름없이 근무했을 뿐 휴게시간 때 자유로운 휴식을 취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근로계약서에 적시된 휴게시간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왜냐하면 근로계약서에 정한 휴게시간을 철저히 지킨다면 사실상 정상적인 경비업무 수행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출근한 지 불과 30분 만에 휴게시간 1시간을 부여해야 할 합리적 이유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A씨는 경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휴게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누가 보더라도 새 근로계약서의 휴게시간은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빨리 회복하고, 건강하고 쾌적한 업무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다. 휴게시간은 임금지급 대상이 되는 근로시간이 아니라는 구실로 결국 중간관리업체는 최저시급으로 실근로시간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면서 A씨를 24시간 사업장에 묶어 둘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중간관리업체가 새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실질적 이유다.

A씨의 사례는 충북교육청이 BTL(Build Transfer Lease)사업 방식을 통해 설립한 학교에서 근무하는 경비노동자가 처해 있는 모습의 일단이다. 충북교육청은 BTL사업 방식을 통해 사업시행자 또는 운영전문사에 20여년간 임대료 형식으로 적정수익률을 보장해 주고, 교육청 산하 각급 학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사업시행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해 일하게 하고 있다.

BTL사업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교육청이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손쉽게 회피하는 수단이 분명하다. 노동자들을 간접고용 형태로 고용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중간착취’의 대상이 돼 열악한 노동조건에 빠지게 된다.

A씨의 경우와 같이 경비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수행하는 실제 경비업무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는 대신 휴게시간을 핑계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면 중간관리업체와 충북교육청은 상대적으로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당이득은 궁극적으로 충북교육청이 BTL사업을 통해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관련 책임을 중간관리업체에 전가하고 부실하게 관리감독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경비원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충북교육청이 우선적으로는 중간관리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덧붙여 차제에 BTL사업 방식을 통한 학교 설립 및 운영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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