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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역시나, 그러나 언젠가는이현아 민변 노동위원회 간사
▲ 이현아 민변 노동위원회 간사

삼성 이재용이 지난 6일 국회 국정조사 1차 청문회 자리에 섰다. 이런 일도 생긴다. 재벌 총수들이 청문회 자리에 서는 모습에 나 역시 기대감이 컸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는,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겠지, 최소한 있는 사실은 인정하겠지 하는….

그러나 이재용을 비롯한 모든 재벌 총수들은 "모른다"거나 "송구스럽다" 혹은 "반성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품었던 일말의 기대감이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일관되게 발뺌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들은 마치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재벌 총수의 기본 자질이라도 되는 양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태도를 고수했다.

이날 이재용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에 대한 질문에 "아이 둘 가진 아버지로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으나, 삼성이 백혈병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황유미씨 아버지에게 내민 500만원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현재 드러난 실태만 보더라도 백혈병·뇌종양 등을 앓고 있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224명이고, 사망자만 76명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올림이 9년을 싸워 왔고, 삼성 사옥 앞에서 비닐 한 장에 의지한 채 노숙농성을 한 지 400일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 한마디만을 남겼다.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더 이상 일하다 죽거나 병에 걸리는 노동자가 없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고, 제대로 보상하라는 목소리가 거리에서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그는 해결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그냥 "가슴이 아프다"고만 했다. 9년 동안 반올림 투쟁을 외면해 오면서 정유라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우리는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가을부터 반올림 농성장 지킴이를 함께했다. 비록 간간이 농성장에 가는 불성실한 지킴이였지만 그래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제는 끝나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매일 저녁, 이어말하기가 진행될 때에는 삼성을 향한 따끔한 한마디가 울려 퍼졌다. 책과 배지를 사러 오는 사람,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사람, 후원하고 싶다고 농성장을 찾아온 사람도 봤다. 반올림의 싸움을 응원하고,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둘씩 농성장으로 모이는 것도 봤다. 그러나 농성장이 여름의 폭염을 지나 두 번째 겨울을 맞고 있는 사이 삼성은 직업병 피해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고, 자신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서만 부지런함을 보였다.

청문회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재용의 경영능력이 의심스럽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경영능력을 떠나 염치와 양심의 문제다. 삼성이 수백억원의 돈을 건네고 수천억원의 이익을 챙길 때 삼성 직업병 피해자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수리기사, 삼성 휴대전화 부품을 생산하다 메탄올로 실명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염치가 있다면 이들을 눈앞에 두고도 “모른다”는 변명으로 일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반올림의 끈질긴 싸움으로 삼성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가 드러났고, 삼성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 삼성은 청문회라는 문턱을 겨우 넘고 한숨 돌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삼성이 저지른 불법과 탈법, 노동인권 유린, 그리고 정경유착의 핵심에 삼성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삼성에게는 반올림과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눈엣가시로 보이겠지만 사람들은 연결돼 계속해서 모일 것이고, 삼성을 향해 끈질기게 목소리를 낼 것이다. 지금 삼성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루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무거운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피눈물 흘리는' 아픔이 무엇인지를 느끼면서 이 겨울을 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현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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