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9일 오후 4시30분 국회는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저녁 7시께 소추안은 헌법재판소로 전달됐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확인된 내용 중 일부만 입증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어렵지 않게, 머지않은 시기에 선고를 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주말을 힘겹게 보낸 후 탄핵소추안을 꼼꼼히 읽어 봤다. 40쪽에 이르는 상당히 긴 소추안이었다. 헌법과 법률 중 위반된 조항만 각각 12개, 4개였다. 헌법 제1조 국민주권주의부터 형법 127조 공무상비밀누설죄까지 적시된 헌법과 법률 위반 사항은 매우 위중했다. 다만 소추안 구성의 경우 우리나라 헌법질서와 제도 위반을 집중적으로 부각했으면 했다.

특히 노동과 관련해 헌법정신이 어떻게 침탈됐는지 제대로 강조되지 않은 점은 크게 아쉽다. “7대 그룹으로부터 미르 등을 통해 받은 뇌물이 노동정책과 관련이 있다”(18쪽)는 정도였다. 시민과 농민 못지않게 많은 노동자들이 연일 광장을 메우지 않았던가. 소추안에 다양한 입장과 관점을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에 이제껏 유린된 ‘노동’의 문제를 소추안으로 정리해 본다. 소추 대상은-대통령 소추안은 이미 국회 몫이므로-대통령과 함께 노동기본권 보장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무위원들로 해 봤다. 국무위원 또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면 탄핵 대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개별 법률 위반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보다는 헌법 기본원리 위반을 기본 틀로 한다. 검토 결과 해당 국무위원들이 위반한 헌법원리는 크게 국민주권 및 자유민주주의 원리, 법치국가의 원리, 사회국가의 원리 등으로 구분된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종·최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 바로 국민주권이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지배를 말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국무위원들에게 주권자는 국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제도는 국민주권 정신의 정점에 있다. 그런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최순실 일당에게 내어 주면서까지 국민주권 원리와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무참히 파괴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정치적 일체를 갖는 국무위원 모두는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헌법에서도 국무위원에게 대통령을 보좌할 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러나 되레 헌법 파괴에 앞장서기도 했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오늘날 국민주권 실현의 핵심으로 나날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보장 수준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2013년 12월 경찰에 의한 민주노총 침탈과 2015년 12월 한상균 위원장의 구속은 그 상징이다. 과거 이른바 주류 언론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는 오래이지 않는가.

국가 운영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해 법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초등학생도 알 만한 법치주의 원리다. 권력분립의 시작으로, 행정의 합법성과 사법에 의한 통제까지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면 충분하다.

돌이켜 보면 이 정부에서 진행된 노동정책은 철저하게 법치주의 원리를 위반한 것이다. 각종 매뉴얼과 행정지침이 헌법과 법률에 앞섰다. 근로기준 법정주의는 간데없었다. 위임근거와 범위를 벗어난 것들이 태반이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한 노동행정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를 지적하는 의회의 부름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의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법부 독립성까지 크게 흔들렸다. 법원의 판결은 국무위원에게 '참고용'으로 전락했다. 예를 들어 2013년 12월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여전하다. 한술 더 떠 대법원 판결 취지에 크게 벗어나는 매뉴얼을 만들어 선전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 헌법 곳곳은 사회국가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기회를 균등히 하여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실현을 보장하겠다는 정신이다. 인간다운 생활(헌법 34조), 최저임금과 근로기본권(헌법 32조), 노동기본권(헌법 33조),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헌법 119조)가 이를 실현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단언컨대 지난 기간 헌법정신은 실종됐다. 찔끔찔끔 오른 최저임금으로 어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실현’을 말할 수 있겠는가. 청년·여성·노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피폐해지고 있을 때에도 이들을 외면하고 대기업의 청탁 해결에만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나.

국무위원들이 사회국가의 원리 폐기에 앞장섰음이 명확하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기본권을 책임져야 할 고용노동부 장관의 실종이다. 경제부처 장관으로 알려진 지 오래다. 이들에게 과연 노동기본권 보장이 귀에나 들렸겠는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