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과 이소선 어머니의 운동에 40여년을 동반한 사람. 암흑의 시대 1970년대와 80년 짧았던 서울의 봄을 거쳐 87년 노동자 대투쟁까지 노동운동의 산증인, 전태일기념사업과 이소선 어머니의 투쟁기록을 담당했던 역사의 기록자. 청계피복노조 위원장 출신 노동운동가 민종덕.

민종덕은 5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60년대 말 일가족이 서울로 올라왔다. 74년 늘 들르던 헌책방에서 전태일의 기사를 접하고, 자신의 길이 전태일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기사에 실린 주소를 들고 이소선 어머니를 찾아가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의지를 밝히고 평화시장에서 노동자가 됐다. 이듬해부터 청계피복노조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해 지역위원·대의원·운영위원·총무부장·사무장을 맡아 활동했다. 소싯적 문학소년이었던 그는 76년부터 사계문학회 활동을 병행했다. 77년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이소선 여사가 구속되고 노동교실이 폐쇄됐다. 그는 이에 맞서 죽을 각오로 싸웠다. 이때 작성한 '결사선언'은 몇 달 전 형이 산재사고로 죽었을 때 어머니 옆에서 자신이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쓴 유서였다. 한 달 가까이 노동교실을 봉쇄하자 사람들을 조직해서 뚫고 들어갔다. "경찰이 들어오면 뛰어내리겠다"며 현장을 사수했지만 곧 진압이 시작됐다. 민종덕은 예고한 대로 3층에서 투신했다. 머리부터 떨어졌으면 사망했겠지만 이상하게 엉덩이부터 땅에 떨어졌고 입원치료를 받느라 구속을 면했다고 한다. 어머니 옆에서 유서를 쓴 얘기를 필자에게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아내도 그 부분은 처음 듣는다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79년 10·26으로 박정희 18년 독재가 끝났다. 민주노조 활동가들은 한국노총 민주화를 위한 논의를 진행했고, 80년 5월13일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한국노총을 점거하며 노조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80년 서울의 봄은 너무나 짧게 끝났다. 광주에서는 '피를 먹고 자라는 민주주의'를 역사에 실천적 과제로 던졌다. 군부 독재권력의 총구가 인민을 향해 불을 뿜었고, 청계피복노조는 81년 1월 강제로 해산됐다. 사무장이었던 민종덕은 이에 맞서 투쟁하다 수배를 당했다. 82년부터 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이후 26년간 활동했다. 수배 중이던 82년 평생 동지인 아내를 만나 85년 결혼했다. ‘구속될 사람 다 구속되고 수배될 사람 다 수배된’ 엄혹한 상황이었지만 지하에서 활동을 이어 갔다. 몇 년 후 활동가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되자 산산조각 났던 청계피복노조를 복구했다. 84년 4월 노조 위원장이 됐다. 전태일 열사 친구 세대가 아닌 세대가 처음으로 노조 집행부를 책임진 것이다. 청계피복노조는 합법성을 쟁취하기 위해 노학연대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민종덕은 85년 8월 서울노동운동연합이 건설되면서 위원장을 맡았다가 9월에 구속됐다. 큰아이 출산 후 19일 만의 일이었다. 2년여 동안 구속됐다. 87년 6월 항쟁 뒤 7월에 석방됐는데,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장례투쟁을 하면서 다시 수배되기도 했다.

청계피복노조는 조합원들의 쉼 없는 투쟁으로 88년 5월 마침내 신고필증(설립신고증)을 받아 '합법성 쟁취투쟁 승리 보고대회'를 열었다. 같은해 민종덕은 전태일문학상을 제정해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이소선 여사로부터 구술을 받아 <어머니의 길>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는 79년까지를 기록했다. 이후 삶은 차후에 완결하기로 약속했다.

전태일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기 위해 2001년 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됐다. 2005년에는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전태일거리와 전태일다리 조성사업을 기획했다.

이명박 정권 시기 전태일 기념사업 일선에서 물러나 사진에 심취하며 지친 심신을 추슬렀다. 2010년에는 구례로 귀촌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소선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평생 과제인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과 이소선 어머니 평전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약속대로 2016년 <노동자의 어머니-이소선 평전>이라는 역작을 출판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지리산 사람들’ 활동과 ‘구례자연드림파크’ 견학자 안내를 병행하면서.

민종덕은 12월9일 파면을 앞둔 박근혜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위해제되고 직무가 정지되던 그 시간에 고려대 노동대학원에서 노동문화상을 수상했다. 시와 사진 분야 수상경력이 있는 그에게 노동문학부문 수상이 추가된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선택했던 치열한 삶과 운동의 이유를 물었다.

"전태일의 진실 때문이죠.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 자세,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사는 삶 때문이죠. 남을 버리고 나를 내세우면 운동이 망하는 것이니까요."

만감이 교차했을 박근혜 탄핵 가결 소감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다.

"87년에 제대로 민주화를 못 시켰으니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웠으면 합니다. 탄핵은 그 시작입니다. 이번에 노동자·민중이 주력으로 역할을 했던 것은 전태일 정신을 제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례로 바삐 내려가 저녁 촛불집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그를 정중하게 배웅했다. 노동자의 역사를 온몸과 마음으로 이어 온 민종덕 위원장님, 항상 건승하시길!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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