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지훈 변호사(법무법인 이지 대표변호사)

대상판결 : 대법원 2016.10.27 선고 2016다29890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들은 한국씨티은행과 섭외영업 위촉계약을 체결하고 텔레마케터로 근무했다.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는 씨티은행의 고객에게 전화로 카드론에 관해 홍보하고 그 신청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원고들은 일정한 시간에 사무실에 출근해 씨티은행에서 30분~1시간 간격으로 배정해 주는 데이터베이스상의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카드론 신청을 권유했으며, 업무의 내용이나 방법 등을 씨티은행으로부터 관리·감독을 받았다.

원고들은 씨티은행을 그만둔 후 각 근무기간에 상응하는 퇴직금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씨티은행은 원고들과 위촉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원고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원고들은 법원에 퇴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2. 소송의 경과

1심(서울중앙지법 2014가합30556) 법원은 원고들이 피고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근무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근로자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퇴직금 청구를 기각했으며, 원고들의 항소에 대해 2심(서울고등법원 2016나1894) 법원 역시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들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원심(2심) 판결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제공관계의 실질이 근로제공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고 회사는 원고들에게 업무수행 중 준수할 업무운용수칙과 스크립트 등 가이드라인을 배부했는데, 위 업무운용수칙과 스크립트 등은 카드회원의 권익을 강화하고 불완전판매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관련 법령을 준수하기 위한 지침으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피고 회사를 위한 업무수행 내용과 방법 등에 관한 지침으로서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으며, 한편 피고 회사가 원고들과 체결한 섭외영업 위촉계약서에는 원고들이 위 업무운용수칙을 위반할 경우 피고 회사가 계약해지를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고 ② 원고들의 통화내용을 모니터링했는데, 민원이 발행한 경우뿐만 아니라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설명, 신청서 오류기재 등 업무수행 불량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도 통보서를 발부하고 통보서 발부 횟수에 따라 수수료 차감, 계약해지 등의 불이익을 가하는 등 원고들의 업무수행을 관리·감독하고 제재했으며 ③ 원고들의 업무수행이나 실적을 관리했고, 근무시간 중 30분 내지 1시간 단위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분배했으므로 원고들이 지각·조퇴·무단이탈 결근 등을 할 경우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적게 받는 불이익을 받는 것이고, ④ 한편 원고들에게 카드론을 신청하게 하는 업무 외에도 다른 업무를 지정하기도 했다는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들이 피고회사에 근로에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4. 대상판결의 의미

이 사건과 같이 고용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위촉계약·촉탁계약 등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을 체결하고 근무한 사람들에 대해 대부분 사용자들이 퇴직금을 지급하려고 하지 않는다.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해야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인데, 위 사람들의 경우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고 위임계약을 맺었을 뿐이므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실제 법률관계(근무행태·업무수행행태 등)는 고용계약관계로 볼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금 지급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의 여러 보호 조항 내지 사용자로서의 의무 조항을 회피하기 위한 사용자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위임계약 형식의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경우 소송을 통해 퇴직금의 청구 기타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결국 이러한 소송에서 중요한 쟁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최근 이 사건과 같이 고용계약이 아닌 위임계약 형식의 계약을 체결한 특수한 형태의 근로자들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예를 들어 채권추심원·텔레마케터·학원강사·택배기사 등). 대법원은 퇴직금 청구의 전제가 되는 근로자성 인정과 관련해 일관되게 계약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구체적인 근무형태 등을 따져 그 실질에 있어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의해 근로자성을 판단한다.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와 관련해 대법원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했는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등이다. 즉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근로제공의 방법, 근로시간 등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면서 자신의 계산하에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노동을 제공했는지 아니면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그 근로자성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대상판결의 경우에도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위 판결요지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들의 근무형태 등 실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했는바, 원고들이 비록 피고 회사와 형식적으로는 섭외 영업위촉계약이라는 명칭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피고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이므로, 피고 회사가 원고들에게 대해 각 근무기간에 상응하는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대상판결과 같은 판결이 있다고 해서 이 사건과 비슷한 다른 사건에서도 근로자성을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신용정보회사와 위임계약 형식의 계약을 맺고 채권추심업무를 수행한 채권추심원들의 근로자성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개별 사건에서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및 증명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대법원 2016.4.15 선고 2015다252891 판결)고 설시했는데, 이는 민사소송법상 변론주의의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소송상 주장·입증책임을 다해야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서, 극단적으로는 동일한 회사에서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형태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 하더라도 소송에서의 그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충실히 소송을 수행해야 근로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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