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지난주에 두 가지 대조적인 대화가 있었다. 하나는 지난 2일 대구지역 1학년 오프라인 강의를 마치고 난 뒤 간단한 뒤풀이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다음날인 3일(토요일) 김천지역 촛불집회에 참석한 후 뒤풀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대구에서는 강의 연장선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도대체 우리는 왜 정치경제학을, <자본주의 운행원리의 비판적 이해>라는 긴 제목의 과목을 공부하는가?”라는 데 관한 대화였다. 정치경제학·마르크스 경제학·자본론은, 그리고 필자의 강의는 공부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학생들이 그런 의문을 가질 만했기 때문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라는 책도 출판돼 있지만 필자는 "자본론은 본래 어려워서 알기 쉽게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은 무엇보다 노동운동 이념을 구하기 위해, 그것을 신앙과 같은 종교적인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과학을 통해 구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학을 통해 힘들여 획득한 이념이 없으면 노동자는 자연발생적 의식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노동운동은 이념이 없는 운동을 하게 되거나(예컨대 실리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본가계급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입각한 이념을 가지고 활동하게 된다(예컨대 개량주의). 이때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추구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는 것을 지향하지 못함으로써 결국은 자본주의 세상 안에서 착취받고 소외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반대가 세상을 바꾸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런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것, 지금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매우 결핍돼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목적의식성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좌파와 우파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지난달 30일 박근혜 퇴진 총파업이 기대한 만큼 위력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은 여섯 번째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열렸다. 이날 경북 김천시에서도 역전 광장에서 촛불집회가 개최됐다. 그곳의 촛불집회는 독특하다. 제목부터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시민 촛불집회'였고, 105차 집회였다. 집회의 주요 구호는 “사드 가고 평화 오라”였다. 매일 집회를 열고 있었고, 토요일에는 문화제 형식으로 집회를 한다고 했다. 주최측은 ‘여는 말씀’ 다음에 문화 프로그램으로 집회를 진행했다. 구미에서 풍물패가 지원 나와 멋진 풍물놀이를 보여 줬다. 어느 전교조 선생님이 노래를 두어 곡 불렀는데, 고 김광석의 노래 한 곡과 안치환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였다. 이어 7살짜리 유치원생이 '마법의 성'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평화나비 율동팀’은 세월호 진실규명 집회에서 널리 불리는 노래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와 함께 경쾌한 트위스트 율동을 선보였다. ‘평화나비 합창단’은 '우리 승리하리라'와 박근혜 퇴진 투쟁가인 '하야가'를 청중과 함께 노래했다.

집회 참여자 중에서 당첨된 사람 세 명이 노래방 방식으로 대중가요를 선택했는데, 한 여성이 장윤정의 노래를, 농소면이 고향이라는 한 남성이 남진의 노래 '어머니'를 불렀다.

집회를 마치고 평화나비 합창단에서 노래한 경북농민회 총연맹 지도부 동지와 뒤풀이에서 대화를 나눴다.

김천에서 처음 사드 반대 촛불집회를 했을 때 주민들이 투쟁을 어떻게 전개할지는 물론이고 집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초보자 상태였다고 한다. 김천 농민회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은 데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둘 뿐이었다. 활동력도 약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시민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간 활동이 부진했던 ‘김천 민주단체협의회’가 3년 전에 재편되지 않았더라면 지속적인 투쟁을 만들어 가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고 꾸준히 도와주면서 기다리면 대중은 이처럼 스스로 발전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대중의 자연발생적 변화·발전의 예증으로서 김천 시민촛불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이날 본 김천 촛불집회는 참가자가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짜임새가 있었다. 연단과 청중이 함께 아우러지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성주에서나 김천에서나 사드 반대와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은 자연발생적으로 잘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문제,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문제 등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할 투쟁과제에 대한 모색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목적의식을 부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대중은 알아서 자연발생적으로 잘 발전한다”는 명제가 지배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변혁운동으로 떨쳐나서게끔 대중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모색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자본주의하에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변혁운동은 자연발생적으로는 발전하지 않는다. 자연발생적으로 그런 운동이 생겨나는 경우에도, 사상·이론의 뒷받침 없이는 힘차게 전진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노동·민중운동의 약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일방적으로 부과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대중이 목적의식적 변혁투쟁으로 떨쳐나서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풀어야 할 숙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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