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다시 외쳤다. 하루가 1년 같았던 날을 일곱 번 보내고서 다시 광화문에서, 전국 도시의 광장에서 외쳤다.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11월19일, 4차 민중총궐기의 날이었다. 광화문에서 60여만명, 전국에서 100만명이 박근혜와 그 일당에게 퇴진하라고 대한민국의 광장과 거리에서 궐기해서 외쳤다. ‘하야가’와 애국가를 부르면서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자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촛불을 들고서 박근혜·최순실 일당과 부역자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노래하며 외쳤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당은 해체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목이 터져라 꺼지지 않는 촛불로 외쳤다.



2. 다음날인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순실 등을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해서 최순실 일당과 범죄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로 입건됐다. 헌법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불소추특권이 아니었다면(제84조) 일당과 함께 구속·기소됐을 것이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범죄행위를 공소장에 자세히 기재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강요미수·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의 공소장 기재 범죄사실은 곧바로 피의자 박근혜의 범죄사실이라고, 공소장에 기재되지 않았지만 공소장은 기재하고 있었다. 무기징역,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특가법상 뇌물죄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 이번 공소장이 불완전한 것이라고 검찰 스스로 자백하는 공소장이었다. 이처럼 미흡한 중간의 수사 발표였음에도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탄핵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할 수 있는 탄핵의 사유에 충분히 해당한다고(헌법 제65조·111조·113조), 피의자 박근혜의 공범 최순실 등에 대한 공소장에서 분명히 기재하고 있었다.

검찰의 중간수사가 발표되자 청와대 대변인(정연국)과 변호인(유영하)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수사는 믿을 수 없다"며 "검찰의 대통령 직접조사에는 일체 응하지 않겠다. 중립적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대국민담화에서 눈물 흘리며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한 "검찰 조사를 성실히 받고 나아가 특검까지 수용하겠다"던 약속을 수일 만에 뒤집어 버렸다. 대통령 박근혜는 거짓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라고, 자신이 거짓말쟁이라고 실토하고 말았다. 그리고서 이제는 심판을 받아야 할 대통령이 어서 탄핵절차를 밟으라고 배 째라 하고 있다. 자신이 저지른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행위가 자신이 임명한 검찰의 공소장으로 확인되자 그 헌법과 법률을 무기로 국민의 외침을 무시하고 법대로, 헌법이 정한 대로 하라고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그러나 법은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헌법은 대통령을 최고권력자로 받들어 모시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가기구가 대통령을 위한 어용의 기구가 아니라면 이 나라의 법은 더는 대통령 박근혜를 위해 작동해서는 안 된다.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을 선언하고서 세워진 법치주의가 이 나라의 기본원리라면 대한민국의 법은 범죄자 박근혜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3. 사실 광화문에서 국민의 분노와 검찰청에서 검찰의 공소장 기재는 법의 심판을 받으라는 것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법대로 국민은 분노하고, 법대로 검찰은 수사해서 기소하고 있다. 이런 국민의 분노를 주권자로서 행동한 것이라고 거창하게 말해야 할 것도 아니다. 법 앞에서 대통령도 평등한 만인 중의 하나라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 헌법의 평등권 조항(제11조 제1항)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검찰의 공소장은 대통령도 형법에 따라 처벌받는다고 말한 것이니 박근혜 대통령의 수사·처벌을 외치는 국민의 분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까지만인 것은 아니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검찰보다 더 나아갈 수 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서 직무를 집행하고 그 직무 수행으로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 박근혜의 명령에 복종을 거부한다. 헌법을 짓밟은 권력이 헌법을 방패막이로 삼도록 용인하지 않는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복종을 모르고 용서를 모른다. 그러니 만약 오늘 헌법이 정한 탄핵절차에 따라 탄핵이 결정될 때까지 박근혜는 대통령이라고 그에 복종한다면 국민은 수사하고 기소하는 검사와 다를 게 없다. 그는 권력에 복종하는 국민일 뿐이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에서 그의 분노는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수사하는 검사의 분노와 다른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지고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그로부터 나온다는(헌법 제1조2항)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분노하고 있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법을 초월한다. 법대로가 아니다. 헌법도,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도 주권자는 초월한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형법도 민법도 심지어 헌법도 초월해서 분노한다. 그는 폭력·파괴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는 범죄자고, 타인의 재산도 아무렇지 않게 침해하는 무법자이기도 하다. 그는 헌법이 규정한 탄핵절차를 초월해서 권력을 심판할 수 있는 자다. 국민소환제가 헌법에 규정돼 있지 않아도 권력을 소환할 수가 있는 자다. 법대로 하는 심판은 행위자 대통령을 심판하지만 주권자로서 국민은 대통령과 그 일당, 그 집단까지 헌법이 규정한 연좌제 금지도 무시하고, 소급입법 금지를 무시하고 심판한다. 헌법에 국민소환제가 있어 대한민국 국민이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냈던 것이 아니었다. 저 4·19의 거리를 질주했던 국민의 핏빛 분노는 헌법을 초월해서 민주주의를 짓밟은 권력을 심판했다. 이런 주권자로서 국민의 행동은 법을 따지자면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폭행죄·협박죄·집시법 위반·폭처법 위반 등 수많은 범죄행위였다. 이런 행위에 대해선 검찰은 공소장에 범죄사실로 기재하게 된다. 하지만 주권자 국민의 법정에선 국민은 심판자이지 범죄자가 아니다. 그러니 광화문에서 국민의 분노는 결코 검찰의 공소장 기재와 같을 수가 없다. 검찰의 공소장을 휴지로 만들고서 국민은 자신이 주권자라고 행동으로 선언한다. 법대로가 아닌, 법을 초월한 무법자로서 국민은 주권자로서 자신을 선언하는 것이다.



4. 박근혜 일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를 촛불로 덮고 있다. 거기서 노동자들도 함께 분노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중총궐기를 주도해 왔고, 한국노총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국민과 함께 박근혜 퇴진 투쟁에서 분노할 것이다. 거기서 노동개악 반대, 성과퇴출제 저지를 외치고 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해서 외치는 그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 온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에 반대하고, 성과연봉제·성과해고제 등을 저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를 광화문광장에서 노동자들이 박근혜 퇴진 구호와 함께 외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이런 노동자의 구호가 박근혜 퇴진이라는 국민의 행동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야말로 국민의 분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행동은 단지 박근혜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이번 사달이 박근혜 대통령이 혼자서 한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와 그 일당, 그리고 부역자인 새누리당 세력과 그와 공모한 자본인 재벌 등이 한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외치고 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당은 해체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광화문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분노하며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이 나라에서 분노는 너무 순진하다. 자신의 이해를 초월해서 국민은 외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의 구호가 순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수능을 마치고 나서 광화문광장에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고3처럼 그렇게 노동자는 순진하게 보이진 않는 것이다. 박근혜 일당과 재벌 자본은 지금까지 고용유연화와 성과주의 도입이라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해 공모해서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법안과 정책을 추진해 왔다. 파견법 등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고, 정규직조차 비정규직과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나라에서 권력과 자본은 공모해서 추진해 왔다. 그러니 노동자가 자신의 구호를 외치면서 국민으로서 박근혜 퇴진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오히려 노동자의 구호는 너무 순진하다. 노동자의 행동은 너무 소심하다.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 온 노동개악에 반대한다는 것을 넘어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외치고 있지 못하다. 법정근로시간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을 초과해서는 노동자가 합의해 주더라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노동제에 관한 구호도 들리지 않는다. 비정규직을 폐지하라는 구호도 하나의 노동자 함성으로 들리지 않는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도 없다. 토요일마다 민중총궐기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아직은 노동자로서 행동은 없다. 하루가 1년 같은 오늘, 민주노총이 30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을 뿐이다. 주권자 국민으로서 노동자의 행동은 아직은 없다. 광화문의 분노는 아직은 노동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주권자로서 국민의 구호가 아직 소심하다. 그렇더라도 노동자는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하라고 자신의 구호를 주저 없이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주권자로서 국민이 노동자의 구호를 함께 분노하며 행동할 수 있도록 노동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라고(헌법 제32조), 단결의 자유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고(헌법 제33조), 나아가 노동자가 노예가 아닌 세상을 원한다고 외쳐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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