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최순실 때문에 패션 명품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최씨가 입국할 때 공항에서 입었던 패딩은 버버리·몽클레어란 말이 돌았고, 신발은 알렉산더 맥퀸이란 말이 나왔다. 입국 때 들고 있던 가방은 토즈란다. 의상실 몰카에선 에르메스로 추정되는 가방도 나왔다.

최씨는 토즈로 보이는 가방을 검찰 출두 때도 들었다. 검찰청 앞에서 벗겨진 신발만큼은 프라다인 게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데 이들 명품업계는 대부분 “저의 브랜드가 절대 아니다”라고 발뺌한다. 몇 년치 제품을 모두 뒤졌는데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몇몇 군데가 달라서 자기네 제품이 아니란다. 입국 때 신은 슬립온 슈즈의 브랜드사로 알려진 알렉산더 맥퀸은 “신발의 바닥창 디자인이 다르다”고 부인했다.

사실 최씨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늘 명품을 걸치고 다닌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는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경제신문은 최씨가 신은 신발과 입은 외투, 들었던 가방까지 시시콜콜하게 주워섬긴 뒤 해당 업계의 반응까지 취재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최순실이 신거나 입거나 들었던 명품이 “절대 우리 브랜드가 아니다”라는 업계의 항변을 <최순실 패션에 명품업계 ‘발칵’>(2일자 20면)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업계 광고로 밥 벌어 먹는 신문사 입장에선 광고주의 이익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 살림살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다. 평소엔 무서워서 벌벌 떨다가 최씨가 먹잇감으로 추락하자마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온갖 신변잡기까지 다 끌어와 지면을 채우는 한심한 언론의 취재관행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지난주 최씨가 자주 다녔다는 서울 강남의 한 목욕탕 세신사 아주머니까지 인터뷰한 동아일보도 불쌍했다.

두 신문은 최씨가 살아 있는 권력이었을 때 언제 한번 시비라도 걸어 봤던가.

최씨 변호인으로 나선 이경재 변호사와 이진웅 변호사도 뉴스거리로 떠올랐다. 이경재 변호사가 학생운동권에서 전향해 ‘공안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는 대목과 이진웅 변호사가 중간에 사임한 것도 뉴스였다.

한국 지식인 가운데 오락가락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300명 국회의원 가운데 절반이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따지고 보면 인권변호의 대표주자였던 고 조영래 변호사도 김앤장에 근무했다. 더욱이 김앤장을 만든 주역들이 사법파동 때 양심을 지킨 소신 판사거나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1994년 출범한 참여연대는 초기 재정난을 타개하려고 물품을 기증받아 바자회를 연다. 당시 참여연대의 주역이었던 박원순 변호사는 조영래 변호사가 친필로 쓴 87년 대선 야권후보 단일화 촉구 법조인 성명서 초고를 바자회에 내놨다. 뜻밖에도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의 대표변호사가 이것을 샀다. 조영래 변호사는 김앤장과 인연이 깊다. 김앤장은 73년 1월 1년6개월 복역하고 나온 조영래를 사무원으로 채용한다. 김앤장은 사무원 지위를 이후 긴 수배기간에도 유지해 줬다. 여러 경로로 장기결근한 조영래의 생활비를 주고 79년 10·26부터 80년 1월 자수 전까진 다시 사무실에 나오도록 허락했다.

김앤장은 73년 12월 42년생 동갑내기 김영무·장수길 변호사가 광화문 극동쉘하우스 4층에 문을 열었다. 장수길 판사는 사시 사법과에 최연소 합격해 71년 6월 신민당사 농성 서울법대생 1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73년 3월 재임용에 탈락한 뒤 김영무 변호사와 손을 잡았다. 결국 김앤장은 60~80년대 진보운동 진영을 뿌리로 태어났다.

조영래 변호사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도 한때 김앤장에 몸담았다. 조 변호사는 82년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탈락한 문재인 변호사에게 김앤장행을 권했다. 문 변호사는 김앤장의 고액연봉 제안을 뿌리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죽자고 곁가지에만 매달리는 박근혜·최순실 보도가 불편하기만 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