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6.8.18 선고 2015나2067268 판결

1. 사실관계
이번 사건의 망인은 1985년 2월1일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008년 1월께까지 소하리공장 및 시화연구소의 간이금형반에서 근무하다가 2008년 2월께 현대자동차의 남양연구소로 전적했다. 망인은 2008년 8월25일 급성백혈병으로 진단받았고 2010년 7월19일 이 사건 질병으로 사망했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재해로 인정돼 망인의 처는 유족급여를 지급받았다. 기아자동차와 노동조합(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이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업무상재해로 사망과 6급 이상 장해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월 이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고 현대자동차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체결한 단체협약에도 같은 취지의 단체협약 조항이 있다.

망인의 처와 자녀 2명은 기아자동차에 대해 근로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면서, 자녀 1명은 단체협약에 근거해 주위적으로 기아자동차, 예비적으로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채용계약의 청약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2. 판결의 요지

서울고등법원은 기아자동차가 망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용했으나,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가 망인의 자녀를 채용해야 한다는 청구에 대해서는 근거가 되는 단체협약을 무효로 판단해 기각했다. 법원은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판단과 관련된 쟁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판시했다.

첫째,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이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약정한 것인지 여부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은 근로자의 채용 자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근로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사항 그 밖에 근로조건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 노동관계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의무적 교섭사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이 피고들이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임의로 단체교섭에 응해 합의·결정한 사항이 아니라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은 임의적 교섭사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아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약정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이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이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을 정정한 것이다.

둘째,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라고 봤다. 그 근거로써 ① 고용계약을 장래 불특정 시점에 불특정인과 체결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은 사용자의 고용계약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고 ② 최근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단체협약을 통해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나아가 사실상 고착된 노동자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우리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하고 ③ 사용자의 보호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업무상재해로 사망한 경우 유족의 생계보장은 금전으로 이뤄지는 것이 채무불이행에 의한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이고, 이 사건 단체협약의 규정과 같은 방식을 통한 배상은 기회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신뢰를 희생한 결과 얻어지는 것이므로, 그 인정 여부 및 인정범위를 정함에 있어 신중을 기한 필요가 있고 ④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은 업무상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유족에게 생계보장이 필요한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지지 아니한 채 일률적으로 사용자에게 직계가족 1인에 대한 채용의무를 부과할 뿐만 아니라, 그 요건에 관해 살펴보더라도 직계가족 1인에게 결격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근로자의 능력적 측면에서는 어떠한 요건도 요구하지 아니한 채 곧바로 채용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과도한 해택을 부여한다고 판시했다.

3. 평가

첫째, 대상판결은 특별채용의 다양한 유형을 구분하지 않은 채 이를 일률적으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 단체협약 제27조1항은 신규채용시 사내 비정규직,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의 자녀에 대해 채용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함을 규정하고, 제2항에서 업무상재해로 인한 사망한 조합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한 특별채용을 규정하고 있다. 즉 노사는 특별채용의 유형과 관련해 업무상재해로 인해 조합원의 유족과 정년 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등을 구별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나아가 사실상 고착된 노동자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매도한 것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국민의 법 감정이 대상판결의 판시와 같이 업무상재해로 인해 조합원의 유족에 대한 특별채용을 다른 유형과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둘째,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실태에 비춰 보더라도 과연 대상판결이 판시한 대로 단체협약 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위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기아자동차가 노조에 제출한 '사망자(장기요양자 포함) 관련 자녀·가족 채용 별도 합의 현황'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이 사건 단체협약 조항에 따라 노사가 특별채용을 협의한 건수는 16회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 사건 단체협약 조항에 따른 특별채용이 기아자동차의 신입사원 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단체협약 조항은 대상판결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사용자의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히 제약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 대물림이나 고착된 노동계급의 출현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이 사건 단체협약의 적용실태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못한 위법이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청년실업시대’라는 분위기에 편승해 이 사건 단체협약 조항을 삭제해 인사권을 강화하려는 사용자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한 정책적인 판결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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