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전 KBS 이사

법인세율을 올리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명목세율 인상이다. 기업소득 구간별 법인세율을 올리거나, 감세 혜택을 모두 받는다고 해도 적어도 이 정도는 내야 한다는 최저한세율을 올리는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야당이 벼르고 있는 방법이다. 2009년 MB정부 때 25%에서 22%로 낮아진 법인세 최고세율을 24~25%까지 올리고 대기업(과표 1천억원 이상)에 적용되는 최저한세율을 17%에서 19%로 올리자(더불어민주당)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명목세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각종 비과세 감면을 줄여 실효세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현 정부가 줄기차게 내세우는 방법이다.

둘 중에서 뭐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선험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세수 증대 측면에서 명목세율 인상은 실효세율 인상과 견줘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정직하다는 차이가 있다. 반면 실효세율 인상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으니 낮으니 하는, 명목세율 인상에 따라붙는 성가신 평가에서 해방되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명목세율 인상에 찬성한다. 첫 번째 이유는, 불필요한 비과세 감면 등 현 정부가 내세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과표 5천억원이 넘는 대기업의 실효세율은 2011년 17.1%에서 2014년 16.4%로 되레 낮아졌다. 1천억~5천억원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동안 19.1%에서 18.7%로 낮아진 것이다. 500억~1천억원 구간만 18.6%에서 18.8%로 조금 높아졌다. 200억~500억원도 18.9%에서 18.0%로 낮아졌다. 명목세율은 그대로인데 실효세율이 낮아졌다는 건 각종 비과세 감면 혜택이 줄기는커녕 되레 늘어났다는 뜻이다.

두 번째 이유는, 2009년 법인세율 인하에도 투자가 크게 늘지 않자 2014년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기업의 당기이익 중 80% 이상을 투자·임금인상·배당에 사용하지 않으면 80%에 미달하는 금액에 대해 10% 세율을 물리는 법인세 추가징수를 말한다. 기업 이익이 지나친 저축(사내유보)으로 쌓이지 않고 투자·임금·배당으로 가계를 통해 국민경제 전체로 흐르게 하자는 긍정적인 취지에서 도입됐다. 이 제도의 도입에 새누리당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업이 투자나 임금인상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기업소득환류세제 적용 대상 규모가 139조5천억원(당기이익의 80%)이었는데, 이 중 투자는 100조8천억원, 배당은 33조8천억원, 임금인상은 4조8천억원이었다는 것이다. 기업이 세금을 안 내려고 불필요한 투자를 하는 멍청이는 아니기 때문에, 임금인상보다는 배당을 늘려 버린 것이다. 실제 추가 법인세를 문 기업은 146개, 액수로는 506억원에 그쳤다. 배당 증가를 통해 자사주를 구입한 해당 기업, 외국인과 부유층 등 일부 계층에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간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장사 총 배당금 19조5천억원은 1년 전과 견줘 26.2%나 증가한 규모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제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야권이 추진하는 법인세율 인상을 막기 위해 보완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대략의 보완 내용은 투자의 인정 기준을 1로 놓을 때 임금 증가의 인정 기준은 1.5로 높이고 배당의 인정기준을 0.8로 낮춰서 임금 쪽으로 흘러가게 해서 부작용을 보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으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국민의당쪽에서 추가 법인세 규모를 산정하는 항목에서 아예 배당은 빼자는 안을 내놓은 것도, 사실상 보완은 해법이 아니라는 간접적인 답변을 내놨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무엇보다, 제도 자체의 함정이 수두룩하다. 투자는 정부가 강제로 유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법인세 덜 내려고 불필요한 투자를 왕창하는 기업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이 제도는 고정자본의 감가상각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투자 규모를 부풀려서 법인세를 탈루하려는 유혹을 크게 할 위험성이 높다.

또한, 당기이익의 80%라는 기준 자체도 매우 모호하다. 아마도 기업의 이익 중에서 보통 20% 정도가 현금성 자산이라는 데서 착안한 듯한데, 이 비율은 대단히 유동적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의 위험에 따라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려는 기업의 성향은 달라지는데 그때마다 제도가 그 뒤를 따라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배당의 인정 기준을 약간 낮춘다고 해도, 이는 오히려 배당 규모 자체를 늘리려는 유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주주에게 돌아가는 실제 규모가 늘어나면 주주로서는 나쁠 일도 아니고, 자사주 매입 규모 등을 감안하면 해당 기업도 나쁘지 않다. 임금 증가의 가중치를 높인다고 해서 임금 증가쪽으로 이익이 더 많이 흘러간다는 주장은 임금을 단순히 하나의 비용으로 보는 주식시장의 논리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임금 증가를 통해 노동소득분배율이 개선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를 균형 있게 보장해야 달성되는 법이다. 기업소득환류세제에서 임금 증가의 가중치를 높인다고 달성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투자할 곳이 마뜩지 않아 크게 늘리지도 못하고 임금 증가에 쓰고 싶은 욕구도 약하고 배당을 늘리라는 압력과 유혹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세율 인상만큼 단순하고 정직한 방안도 없다. 각종 비과세 감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명목세율 인상을 통해 세수를 늘리는 것에 나는 찬성한다. 다만 최저한세율을 동시에 높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늘어나는 세수는 최저임금의 꾸준한 인상, 청년층까지 포괄하는 근로장려세제 강화 등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최저한세율은 기존 7%에서 현행 근로소득세 하한선인 6%와 동일하게 낮출 수 있다. 최저임금의 꾸준한 인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전 KBS 이사 (cjsa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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