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동자들이 23일 성과연봉제 확대를 반대하면서 하루 총파업을 진행한다. 11월과 12월 2·3차 파업도 예고했다. 공공기관 노조들도 같은 이유로 총파업에 나설 계획이어서 노정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노동자들이 산업차원에서 총파업을 한 것은 98년 9월이 처음이다. 이어 2000년 7월 다시 총파업을 했다. 모두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에 닥친 구조조정에 반발한 파업이었다. 그리고 2014년 9월 공공기관 복지축소에 반발해 금융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차례 파업한 바 있다. 금융산업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몰고 올 정부정책이 나올 때라는 공통점이 있다. 생존권 보장과 올바른 금융산업 미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최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정관계 파국의 원인을 짚어 봤다.<편집자>

1. 무한 경쟁, 벼랑 끝에 몰린 금융노동자들
2. 고객 돈 볼모로 한 성과주의 경쟁
3. ‘위기-성과주의-위기’ 부른 관치금융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일하는 김아무개(44)씨는 최근 금융공기업과 민간은행에서 확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 성과연봉제가 낯설지 않다. 공사는 이미 2011년부터 개별 성과연봉제를 시행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김씨는 5개 단계로 이뤄진 성과등급에서 딱 중간인 B등급을 받았다. 기본급 인상분과 성과급 모두 기준금액보다 많이 받지도, 적게 받지도 않았다. C·D등급으로 분류돼 기준을 밑도는 기본급 인상분과 성과급을 받은 동료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개별 성과연봉제가 들어온 뒤로 회사 분위기는 크게 변했다. 동료나 선후배들은 모두 경쟁 상대가 됐다. 업무 노하우를 공유하는 조직문화는 사라졌다. 부서장이나 팀장 눈치를 보는데 급급해졌다.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부여 받아야 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산관리공사의 성과연봉제는 내년부터 확대된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2월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 성과급 비중이 높아지고 연봉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김씨는 “안 그래도 후배들에게 업무 노하우가 전해지지 않는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성과연봉제를 강화하면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내 목표 달성하기도 바쁜데 옆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금융노동자에게 유독 가혹한 성과주의
“경쟁 과열에 업무 노하우 전수도 중단”


김씨가 전한 자산관리공사의 상황은 다른 금융공공기관·민간은행의 미래 모습일 수 있다. 개별 성과연봉제 확대를 앞두고 있거나, 그 여부를 놓고 노사가 갈등하는 곳에서 노조가 걱정하는 성과연봉제의 문제점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금융노조를 포함해 노동계는 성과연봉제를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 발표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의 결정판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가 양대 지침을 발표한 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권고했고, 금융위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열흘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일이다. 노동계가 성과연봉제를 "해고연봉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정부가 분위기를 조성한 셈이다.

더구나 정부의 성과연봉제 밀어붙이기는 금융산업에 집중되고 있다. 금융위는 기재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보다 성과급 비중이 큰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은행연합회는 7월에 금융위 가이드라인보다 연봉격차를 더 넓히는 내용의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금융현장은 성과경쟁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로 뒤덮이고 있다. 금융노동자들 ‘협업의 붕괴’와 ‘직무경험의 단절’을 가장 걱정한다.

IBK기업은행 서울지역의 한 지점에서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지점장들이 지금까지 해 온 역할은 일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후배들에게 업무경험을 전수하는 것 이었다”며 “개별 성과연봉제를 하면 잠재적인 경쟁자들에게 굳이 일을 가르쳐 줄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에서 20년 넘게 일한 이은주(가명) 차장은 "요즘에는 메신저 토론방 같은 곳에서 말을 걸어도 서로를 불신하거나 눈치 보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을 느낀다"고 했다. 토론을 제안했다가 “저의가 뭐죠?”라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 차장은 “말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까 봐 그러는 것 같다. 하나에서 열까지 평가를 받는 성과연봉제를 하면 이런 분위기는 심해질 것”이라며 “암담하다”고 호소했다.

노동시간단축 분위기에 찬물
“장시간 노동, 감정노동 악화할 것


성과경쟁은 노동강도 강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 노동강도 강화는 은행노동자들이 연봉감소나 고용불안만큼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1년 발표한 은행업 노동시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은행원들이 가장 많이 꼽은 초과노동시간 증가 원인이 바로 성과문화(39%)였다. 다른 원인인 정규 근무시간에 다 할 수 없는 업무(18%), 상사 눈치보기를 포함한 직장문화(17%), 절대적 인원부족(16%)의 두 배를 넘는다.

성과연봉제를 시행하게 되면 은행현장의 노동시간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현장에서는 노사합의로 어렵사리 도입한 근로시간단축 관련 제도를 포기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읽힌다.

기업은행은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PC오프제를 시행하고 있다. 저녁 7시가 되면 PC가 자동으로 꺼지도록 한 제도다. 오후 7시 이후에 근무를 하려면 사전 승인절차를 밟아야 하고, 직원들의 야근이 많아질수록 지점장의 경영평가 점수는 하락한다.

성과연봉제 시행 소식은 이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기업은행에서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앞으로 개별 성과평가를 받게 되면 퇴근시간 관련 지점장 경영평가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실적을 올릴 수 있다면 초과근로를 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될 것”이라며 “당장의 근로시간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반문했다.

절대적인 노동시간 증가는 물론 노동의 질도 악화될 게 뻔하다. 금융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월 발표한 ‘금융부분 감정노동과 블랙컨슈머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내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영업실적·경영평가 등 성과주의 조직문화’가 77.8%로 1위를 차지했다. 악성민원(블랙컨슈머) 응대(75.6%)보다 많았다.

은행노동자들에게 감정노동을 하게 되는 원인 세 가지를 꼽아 보라고 했더니 △과도한 민원(74.2%) △회사의 업무감시(67.2%) △금융감독원의 민원발생 평가제도(48.2%)에 이어 성과평가 시스템(44.8%)이 지목됐다.

은행노동자들에게 성과연봉제 확대는 ‘건강 적신호’로도 이해된다. 한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는 김민수(가명·44) 차장은 “주변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고, 입사해 처음 모셨던 상사는 몇 년 전 자살했다”며 “과도한 업무부담 때문인데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은행의 서창민(가명·39) 과장은 “지금도 블랙컨슈머들을 상대하면서 모멸감을 느끼는 일이 많은데 실적을 강요하게 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고객 번호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 은행노동자들은 개별 평가까지 하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경우 장시간 노동과 극심한 감정노동으로 내몰릴 것을 우려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성과연봉제로 생산성 향상?
국내외 연구결과는 부정적


정부와 금융산업 사용자들이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경쟁을 통한 실적·생산성 제고다. 그런데 노동자를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성과연봉제가 생산성이나 실적을 높인다는 보장은 없다. 각종 연구 결과는 엇갈리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성과연봉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연구 결과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적인 저명 경영학전문지 ‘Journal of Business Research’에 지난해에 수록된 논문 ‘집단보상과 개인보상이 작업그룹에 미치는 영향’이다. 집단 성과급제가 개인 성과급제보다 우수한 실적을 낸다는 내용이 핵심인데, 집단 성과급제를 적용한 개개인의 협동적인 행동이 실적을 높였다는 것이다.

올해 2월에는 인사조직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가 ‘성과에 집착할수록 성과는 하락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비슷한 연구 결과는 국내에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2월 발표한 ‘차등적 임금인상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인상액 차등폭이 16.6%일 때까지는 생산성이 증가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생산성이 감소했다.

보고서는 “차등적 임금인상 폭을 너무 높게 설정하면 구성원 간 과도한 경쟁 또는 협력 저하, 업무 외 역할 기피 등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제도를 도입하려면 장기적인 특성이 고려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고-최저 등급 간 기본연봉 인상률 격차를 평균 3%포인트 이상 누적해서 유지하도록 하고, 최고-최저 등급 간 연봉 차등폭을 최소 2배로 설정한 금융위 가이드라인대로라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과도한 내부 경쟁 때문에 업무협조는 물론 업무경험 축적도 힘들어진다”는 우리나라 금융노동자들의 호소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닌 셈이다.

정부·재계도 알고 있는 성과주의 폐단
아무런 해결책 없이 다시 칼 빼들어


그렇다면 정부와 재계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나 폐단을 모르고 있을까. 대한상공회의소가 2008년 1월 작성한 ‘한국형 성과주의 인사의 발전방향’ 보고서에는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대한상의는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생존 차원에서 단기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 서구의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급작스럽게 도입한 결과 일부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가 지적한 문제점은 △체계적인 목표관리와 평가체제 미비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목표 치중 △공정한 평가와 결과의 피드백 부재 △팀 간 협력과 조직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함 △연봉제 등 회사 특성에 맞지 않는 보수체계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승진제도 △인재개발과 육성 연계 부족이었다.

그동안 노동계가 지적한 문제점과 흡사하다. 같은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국내 기업 CEO와 임원들은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문제점으로 △단기성과 집착(74.3%) △팀 및 부서 간 협력 저하(35.5%) △평가에 대한 불신(26.6%) △직원 사이의 과도한 경쟁(21.3%) △장기적인 인재육성 부족(13.1%) △회사 로열티 저하(8.9%)를 지적했다.

정부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부가 2005년 6월 실시한 연봉제·성과배분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연봉제의 문제점으로 평가에 대한 불신(60.4%), 단기실적 치중(16.6%), 고용불안 확산(12.7%), 직원 간 과도한 경쟁(5.3%)이 지적됐다.

당시 노동부는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확산·정착돼 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공정한 평가시스템, 성과배분 기준 마련 등 제도운영상 개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간부직은 어느 정도 성과연봉제가 정착됐지만 비간부직은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다시 성과연봉제의 칼을 빼들었다. 스스로 지적한 연봉제의 문제점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도 말이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수많은 폐해 사례가 있어 다수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말리는데도 (정부가) 기를 쓰고 강행하고 있다”며 “단순한 제도 도입 차원이 아니라 성과연봉제를 이슈화해 노동자들을 통제하겠다는 목적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학태, 구은회, 양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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