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국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이번에는 제 차례인 것 같아요….”

회사의 퇴직권고를 거부한 이후,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이 주 업무가 된 IT기획 노동자의 말이다. 클라이언트의 과도한 요구에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노력했고, 이어지는 야근에도 최소한의 삶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노동자가 회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회사와 맞지 않으니 알아서 나가 달라”는 퇴직권고를 거부한 이후 해당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은 시작됐다. IT업계 특성상 일상적으로 야근이 이어지기 때문에 회사는 평소 그의 지각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권고를 거부한 이후부터 유독 해당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1년의 재직기간 동안 11분 지각이 가장 늦은 지각이었던 이 노동자에게 회사는 1분만 늦어도 ‘무단지각’이라며 경고와 시말서 작성을 요구했다. 심지어 8초, 10초, 30초 지각에 대해서도 시말서를 요구했다. 또한 업무시간에 10분 자리를 비운 것이 ‘무단외출’이 됐고 여기에 ‘업무수행능력 부족’ ‘조직 위계질서 문란’ 등 각종 사유를 덧붙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회사는 인사발령 처분을 하면서 “기획자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부족함에도, 무단지각과 무단결근을 일삼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으므로 기획업무를 박탈하고 지원업무를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아 전 직원이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했다.

처음 이 사건을 진행할 때 당사자는 인사발령의 취소를 통해 자신에게 문제가 없고, 잘못한 것이 없다는 판단을 꼭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괴롭힘이 계속되자 “이제는 힘들어서 취하하고 그냥 그만두고 싶어요. 어차피 인사발령이 취소돼도 회사의 괴롭힘은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요” 하고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마다 당사자에게 특별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회사의 이런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괴롭힘 앞에서 나 또한 굳건하고 의연하게 이겨 낼 자신이 없었고, 만약 부당인사발령임이 인정된다 해도 회사가 스스로 괴롭힘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당사자는 계속해서 괴로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시 인사발령이나 해고 같은 구체적인 처분이 없다면 실질적으로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다툴 방법이 없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상담은 끊이질 않는다. 상사의 불쾌한 접촉을 뿌리치자, 다음날부터 과도한 업무지적이 시작됐다는 노동자부터 좁은 방에서 몇 시간이고 지속되는 면담과 시말서 작성이 하루 일과라는 노동자, 퇴직권고를 거부했더니 일부러 전체 회식에 부르지 않고, 급여를 3일·5일씩 미뤄 지급해 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는 것도 이제 지친다는 노동자까지…. 처음에는 노조와 회사의 팽팽한 대립 구조에서 ‘노조 탄압 수단’으로 등장했던 일터 괴롭힘은 점점 개별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노무관리 수단’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만들어지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기업의 이익이 우선이고 노동자의 존엄성은 당연하게도 뒷전에 놓이는 현실에서, 기업이 ‘일터 괴롭힘’을 일종의 노무관리 방식으로 활용할 만한 유인은 충분하다. 더욱이 이를 금지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규제가 없고, 특정 대상에게 이뤄지는 괴롭힘 과정을 다른 직원들이 지켜보도록 해서 일종의 ‘공포정치’와 같은 효과도 거둘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퇴사권고를 받을 때, 노조 가입 제안을 받을 때, 장시간 근로를 요구받을 때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은연중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엄한 가치를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이러한 존엄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기본적 원칙이다. 그러나 ‘일터 괴롭힘’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기업의 이윤이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성보다 우선하는 이 척박한 노동현실에서 노동자에게 존엄성이란 사치가 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들어 봤을, 아니 한번쯤 해봤을 말이 그렇게 학습되고 공고해지는 것이다. “까라면 까야지,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노동자는 일터에서 여전히 존엄한 가치를 보장받아야 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돈 버는 게 어디 쉽겠냐”며 일터에서의 괴롭힘을 견디는 것이 을의 숙명인 듯 참고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나으면서 배부른 소리한다. 더한 사람도 많으니 참아라”는 식의 비교는 그만하고, 노동자가 존엄성을 존중받고자 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가 아닌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요구라는 것이 확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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