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여름 끝자락이라 불리는 말복이 지났어도 휴대전화에는 폭염경보 문자가 울린다. 유례없는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소식을 갈망하지만 날씨만큼이나 세상도 숨 막히게 돌아간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16일 단행된 정부 개각은 그 절정을 이룬다.

박근혜 대통령은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 나가고 있다”며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이 얘기하는 '헬조선'을 지칭한 듯하다.

그의 발언은 '정신승리'로 이어진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 할 수 있다는 신념과 긍지를 토대로 (…)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슴에 품고,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아버지의 ‘하면 된다’를 그 딸은 ‘할 수 있다’로 이어 받았다.

한국은행은 내년에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313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해 상반기 20대 청년실업자수는 45만명에 육박한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주민 900여명이 삭발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관계자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해서 사회에 치명적 해독을 끼친 책이라고 했다. 이 책은 박정희 군사정권 때 금서로 지정됐으나, 유신체제시절 지식인과 대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혔고 1999년 서평전문지 출판저널에 의해 ‘20세기 한국고전’으로 선정됐다.

이쯤 되면 재난 경보가 울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로 인한 국민의 정신건강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정적으로 만든 대한민국을 국민이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는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것 아닌가.

뒤를 이어 발표한 개각 내용을 살펴보면 답답함이 더해진다. 교체가 예상됐던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유임됐다. 지난 2014년 7월에 취임한 이기권 장관은 이로써 장수 장관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한 일이 무엇이기에 장관직을 계속 유지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개혁을 당초 기조대로 지속 추진하라는 것’ ‘노동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가지기 위함’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잘할 때까지 계속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연장된 임기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울 수 있는 기록이 한 가지 있다.

역대 최장수 노동부 장관은 정한주씨로 1982년 5월부터 1985년 2월까지 2년7개월을 역임했다. 진념·이상수씨가 각각 2년2개월, 2년1개월을 재직했으며 이기권 장관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좀 더 친절하게 일 단위로 계산하면 정한주 1004일, 진념 805일, 이상수 789일이며 이기권 장관은 19일로 766일을 재임하고 있다. 큰 사고를 치지 않고, ‘잘할 때까지 장관을 유지’할 경우 2위까지 치고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어차피 유임된 이상 장관이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내친김에 1위까지 노리길 바란다. 물론 이를 위해서 그는 잘할 때까지 한다는 기조만 유지해야 할 것이다(진짜 잘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이 정부의 노동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누가 장관이 된들 똑같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라거나 ‘별 걸 다 계산하고 있다’고 책망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저 별 꼴을 다 보다 보니 그럴 거다, 그리고 뜨거운 날씨 탓이다, 하고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우리도 남 탓 좀 해도 되지 않겠나. 누구처럼.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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