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승현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지난달 19일 파면됐다. 파면 조치를 결정한 인사혁신처는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실추시킨 점, 고위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품위를 크게 손상시킨 점”을 이유로 밝혔다. 영화 속 대사를 현직 고위관료의 입을 통해 듣게 됐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아연실색케 했지만 영화 속 권력자들의 탐욕과 유착에 관객들이 분노할 때 “민중은 개·돼지”라는 배우의 대사에 고개를 끄덕이고, 기자 앞에서 공공연히 참담한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오만함이 현재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참담하기 그지없다.

다툼의 여지 없이 그의 발언은 사회 성원들이 고위공직자의 위치에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품성과 교양의 정도에 한참 못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이 그가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까지는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품위가 없는 말과 행동을 이유로 파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품위라는 개념은 사회생활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념이기 때문에 그 추상성으로 인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판단이 가능할 수 있고, 품위가 없으면 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공무원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좀 더 높은 수준의 품위유지의무가 요구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자에 대해 우리가 요구하는 품위의 수준 역시 그리 관대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고등학교 선생님인 A는 학교의 비리를 언론에 공개했다는 의심을 받는 과정에서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파면됐고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A에 대한 파면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이때 학교가 내세운 품위 없는 A의 행동이란 고작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블로그에 작성한 게시글에 대해 반발하는 일부 사람들이 학교로 항의전화를 한 사실, A가 주차 문제로 이웃주민과 다투고 버스 운전기사·아파트 경비원 등과 말다툼을 한 사실 등이었다.

육군3사관학교 사관생도 B는 음주·흡연을 해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았고 법원은 학교의 처분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사관생도가 술을 마시고 흡연을 하는 것이, 교사가 이웃 주민과 소소한 다툼을 한 것이 그들 혹은 그들이 소속된 집단의 품위를 손상하는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를 이유로 징계를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육군사관생도가 주말에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사관생도로서의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 사안에서의 품위 기준과 음주·흡연 사례에서의 품위 기준이 과연 동일한 것이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품위의 문제는 공적영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방 중소 제조업체 소속 노동조합 위원장 C는 단체교섭 과정에서 회사가 기존에 일괄적으로 지급하던 실비보상적 성격의 유류비를 일방적으로 삭감하려 하자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상무이사 앞에서 회사 공고문을 집어던지고 언성을 높인 것이 품행 불량, 회사 내 풍기·질서를 문란하게 한 것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C가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C의 행위가 징계사유에는 해당하지만 적정한 징계수위를 초과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해고가 무효라고 봤다. 해고가 무효라는 확인은 받았지만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C는 여전히 품위 없는 직원이고 해고보다 경한 징계는 언제든 가능한 상황이 됐다.

이쯤 되면 이 땅의 노동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품위 있을 것을 요구받는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런데 그 품위가 정말 자신이 하는 일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품성과 교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조 위원장이라도 상급자에게는 공손히 문서를 내려놓고 겸손한 어조로 대화를 해야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일상생활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더라도 교양 없이 언성을 높이며 다른 사람과 다퉈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의미 없이 강요되는 품위는 기본권 침해, 위법한 노동 통제에 불과하다. "민중은 개·돼지"라 일컫는 공무원이 파면당하는 모습을 보며 인과응보·권선징악이 실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파면당한 공무원이 진정 다다르고 싶어 했던 우리 사회 그 1%들은 품위 있게 우리를 길들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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