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진짜 성공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고 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에요. 청년들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살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합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최우선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피플 잡카페 플랫폼’에서 만난 정유석(55·사진) 재단법인 피플 이사장은 평소 꿈꾸던 삶과 청년에 관한 얘기를 펼쳐 놓았다. 정 이사장은 1991년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뒤 23년간 성공한 산재전문 노무사이자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2014년 7월에는 현업을 떠나 사재 10억원을 털어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 피플 이사장에 취임했다. 산재노동자와 취약계층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재단법인 피플은 만 2년 동안 산재노동자와 가족, 결혼이주민, 외국인유학생, 청년구직자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했다. 올해 7월4일 문을 연 플랫폼도 그런 활동의 일환이다. 정 이사장은 "청년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취업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열린 공간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재노동자·결혼이민자·청년구직자 지원

- 재단법인 피플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2년이 됐다. 소회가 남다를 듯하다.


“지금보다 더 새롭게, 사회에 도움 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잡고 있다. 청년에게, 이 시대 약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재단법인 피플은 △산재가족 희망센터 △취업지원센터 △글로벌 청년지원 같은 사업을 진행해 왔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수탁한 산재가족희망사업(사회적응프로그램)을 통해 산재노동자와 가족의 소통과 안정, 재활, 직업복귀를 돕는 데 일조했다. 고용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위탁받은 뒤에는 결혼이민자와 청년구직자 취업을 위해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결혼이민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 ‘피플앤컴’을 설립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컴퓨터를 후원하고 문화교류도 하고 있다. 무료법률상담·재능기부·무료공연 사업에도 주력한다. 그런 활동의 연장선에 최근 문을 연 ‘피플 잡카페 플랫폼’이 있다. 정 이사장의 구상은 무엇일까.

“우리 세대는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청춘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예전보다 기회가 많지 않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하면서 보니 월 150만원이면 괜찮은 일자리라고들 한다. 그런데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에게는 월세 내고 먹고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꿈을 갖고 노력하라고 립서비스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플랫폼을 오픈한 배경에는 청춘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부채의식은 그의 아픈 청춘에서 싹텄다.

“난 원래 촌놈이다. 땅끝마을 전남 해남이 고향이다. 우리 사회 약자인 농부의 비애를 직접 봤다. 20대 초반 내가 처음 서울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마늘을 수확해서 트럭을 빌려 서울 가락시장에 왔다. 현지에서는 얼마 못 받으니까. 하지만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락시장에서 마늘을 팔고 나니까 트럭운송료도 안 나오더라. 화가 났다.”

취업준비 ‘정거장’ 잡카페를 열다

그때 경험은 정 이사장을 사회적 약자 곁에 머물도록 했다. 피플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산재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이었고, 뒤에 결혼이민자·청년구직자로 확장됐다.

“우리 시대 직장인의 바람은 집 한 칸 마련해 가족과 단란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가장이 사망하면 그 집안은 산재인정 여부에 따라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밑바닥으로 추락하느냐 갈림길에 서게 된다. 특히 과로사는 단정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약간의 차이로 산재를 승인받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산재인정이 안 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람의 손을 누군가는 잡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하면서 만난 결혼이민자도 그랬다. 정 이사장은 “결혼이민자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나라에 시집 와서 녹록지 않은 삶을 산다”며 “스스로 일해서 고국의 어려운 가족을 도우려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폐컴퓨터 재활용 사회적기업인 피플앤컴을 설립해 결혼이민자 4명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줬다. 지난해부터는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대상이 청년으로 전환됐다.

-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하면 청년들을 직접 만날 텐데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을 것 같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현실적으로 절박한 경우가 많다. 수년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는 이들도 다수다. 만 18~34세 저소득 가구 청년이 사업 대상이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굶더라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서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이 달린 직업을 섣불리 평가해서도 안 된다. 청년들을 만날 때면 예전에 노무법인 대표로 신입직원 면접을 볼 때가 생각난다. 면접 자리에서 엄청 떨고 말도 제대로 못하더라. 그들의 취업준비를 돕고 힘을 불어넣고 싶어 잡카페를 열게 됐다.”

정 이사장은 재단법인 피플 건물 1층을 잡카페로 개조했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으로 방문한 청년들의 취업준비를 돕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청년들이 공부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커피와 음료수도 판다. 아주 싸게. 관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3명에게 맡겼다. 잡카페가 취업준비를 하는 청년들에게 ‘정거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청년구직 지원하고, 사회적 약자 소통공간 만들 것”

- 플랫폼에서 준비 중인 사업이 있나.


“사업주로서 신입직원 면접 경험을 살려 자기소개서 작성법이나 면접 지도를 할 생각이다. 강남의 어떤 클리닉은 자기소개서 8회 작성에 500만원을 받는다고 하더라. 플랫폼을 이용하는 청년에게 관련 노하우를 무료로 제공할 생각이다. 현업 종사자들을 플랫폼에 초청해 직업의 세계를 들어 보는 시간도 마련할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만이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공무원이라고 모두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만족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청년들이 현업 종사자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잘할 수 있는 직업을 찾도록 돕겠다.”

플랫폼은 청년들의 발길이 뜸한 오후 4시부터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된다.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 사정이 어려운 청년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거나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공간을 빌려준다. 꼭 청년이 아니라도 된다. 산재노동자나 가족, 외국인유학생들이 해당 공간에서 소통할 수도 있다.

“중국인유학생과 한국인이 일대일로 매칭해 플랫폼에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면 어떨까요? 주말에는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통해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요. 플랫폼은 복합공간이니까 각종 교육이나 콘서트를 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정 이사장의 꿈은 플랫폼에서 멈추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청년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청년의 80%가 대졸자인데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직업군이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우선 법률서비스 분야에서 성공모델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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