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에너지산업의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 300년의 화석에너지는 종언을 고하고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류가 돌을 다 써 버려서 석기시대가 종말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에너지학자 토니 세바는 2030년이 되면 현재의 화석에너지에 기반을 둔 전력회사들은 모두 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도체에 기반을 둔 태양광 발전이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 에너지산업, 특히 태양광발전시스템 기술의 진보는 과거 300년 동안의 화석에너지 진화를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비약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태양광을 비롯한 친환경에너지 기술은 생산비용과 효율측면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축적이 이뤄지고 있고, 이에 따른 에너지 저장기술 또한 소규모 배터리 중심에서 대형 배터리로 확산되고 있다.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에서도 과거 패러다임을 뛰어넘고 있다. 대량생산과 대용량 송전시스템에서 소규모 분산전원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IT기술 발전에 기반을 둔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그리고 지능형검침 인프라(AMI) 같은 네트워크 진화가 이를 촉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이 같은 기술진보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투자 규모나 정책적 지원 측면에서 어쩌면 선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국가적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42조원을 투자해 석탄화력 26기에 해당하는 1천300만킬로와트의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하고,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ESS) 확대를 위해 촉진요금제도 같은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지능형 검침 인프라도 빠르게 확신시켜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필자는 에너지산업에서 이 같은 기술의 진보, 그리고 이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투자에 딴지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고 미래를 위한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술의 진보가 자본이 주도하고 자본 요구에 부응하는 전력산업 시장확대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기술진보가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배제하는, 그리고 자본의 축적을 가속화하는 수단이 됐던 경험을 우리는 과거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무수히 목도했다. 전력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몇 해 전 아시아태평양 전력네트워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는데 마침 도쿄 시나가와에 있는 복합화력발전소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최대 출력 114만킬로와트에, 53%가 넘는 높은 열효율을 자랑하는 최첨단 발전설비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노동조합 위원장인 필자 입장에서 볼 때 불과 6명의 근무자만으로 이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고민과 우려로 다가왔다. 이 같은 현상은 기술진보와 궤를 같이하며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온 것이다.

복합화력발전 같은 생산기술 발전과 더불어 감시제어시스템 진보가 수많은 전력노동자 일자리를 대체했다. 또한 이 같은 기술발전의 결과는 시장경쟁과 민영화라는 정책을 통해 자본의 이윤으로 전환되면서 대부분의 국민·노동자들은 그 혜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막대한 투자비를 통해 전력산업의 기술진보를 촉진시키겠다는 정부 정책이 막대한 국민 세금, 그리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자본의 이윤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서는 절대 안 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막대한 투자를 전제로 하는 정부의 에너지산업 정책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부는 4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비를 누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최근 발표한 에너지 공기업의 시장 확대와 민영화 정책이 결국 재원마련과 사적 자본의 에너지산업 참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우려고 에너지산업 노동자들의 주장인 것이다.

결국 기술발전을 위한 투자와 관련 인프라를 공공부문이 구축하는 대신, 시장경쟁을 내세운 민영화 정책으로 모든 혜택은 자본이 가져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권력과 자본의 담합정책이 바로 에너지 신산업 정책과 맞물린 기능조정 정책의 전모인 것이다.

에너지 기술 발전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정책이 국민 부담과 노동자 희생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쟁과 민영화를 방향으로 한다면 국민과 노동자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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