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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노조를 위한 변명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어김없이 ‘귀족노조’다. 임금·단체교섭을 진행하고서 조정신청과 찬반투표로 쟁의절차를 거치고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즈음이면 듣게 되는 그 말이 2016년에도 들려온다. 귀족이라 불리는 노조는 그때그때 다르다. 지난주에는 구조조정이 밀어닥치고 있는 현대중공업 등 조선사와 어용노조를 통한 민주노조 파괴공작으로 논란이 돼 온 갑을오토텍 파업을 두고서 이 나라 언론은 이 말을 사용했다. 현대중공업노조가 15일까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하자 일부 보수언론은 위기의 조선사업장에서 1억원대 연봉 노동자의 노조가 사측에 기본급 5.09% 인상, 성과급 250% 보장, 조합원 100명 이상 해외연수 등을 요구했다며 '철밥통 노조 이기주의'라고 비난했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의 파업투쟁에 연봉 8천400만원으로 업계 최고 대우를 받는 '귀족노조'가 불법 공장점거에 들어갔다며 비난했다. 오는 20일에는 현대자동차지부가 조선사노조와 공동파업을 하고, 금속노조 일정에 맞춰 기아자동차지부 등까지 포함해서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면 이 말로 보다 많은 노조를 비난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귀족노조’의 변명은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가 1억원대 연봉을 받는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노조는 실수령액 141만원의 10년차 노동자의 월급명세서를 보여 주고, 노조 사무국장은 "사측이 최근 경기불황을 이유로 고정연장수당과 연장·휴일근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각종 수당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며 "기본급과 수당을 합쳐 평균 210만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갑을오토텍지회 부지회장도 "평균 근속 22년에 실수령액은 370여만원 수준인데도 언론이 회사 비서실이 만든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보도했다"며 “파업 이후 쌓인 물량으로 잔업이 늘어나 잠시 연봉이 늘어난 것 뿐"이라고 '귀족노조' 혐의를 반박했다. 보수언론이 아닌 언론에 이렇게 보도됐다. 오늘도 이렇게 이 나라는 귀족노조냐 아니냐를 두고서 다투고 있다.

2.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 비난받아야 하나. 귀족노조다 뭐다 대기업노조가 파업투쟁한다 하면 튀어나오는 말이다. 비난의 말이다. 뭐 하루살이 비정규 노동자가 있는데,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들 천지인데 너희들은 왠 배부른 투쟁이냐고 비난하는 말이다. 회사 사정, 나라 경제 사정도 생각하지 않는 ‘배부른 떼쟁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듣는 것도 이골이 난다. 임단협 교섭하다 쟁의절차에 돌입하기만 하면 사용자자본을 대변하는 언론은 이런 뉴스기사를 쏟아내는데, 언제부터였던가. 공식적이고 노골적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노무현 정권이던가.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대기업노조 투쟁을 비난했었다. '조중동' 보수언론과 자주 대립하던 나름 민주 개혁 대통령이 한 말이었다. 그때부터 10여년 이 나라에서 자본과 권력은 7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고액 연봉 조합원의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며 달려왔다. 이 비난이 정당하다면 이제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쟁취하는 데 주저해야 마땅하다. 높은 수준의 권리를 쟁취하게 되면 그 노동운동은 귀족으로 비난받고 멈춰야 할 테니 말이다. 이는 노조를 비난하는 데 이 말을 사용해 온 그들의 의도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도 이런 말을 당연한 전제로 해서 귀족노동자의 고용과 임금 등 권리를 삭감하고자 추진해 왔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 보호를 약화시켜야 비정규직과 차별이 없게 된다고, 장기 근속의 그들의 임금을 삭감해야 비정규직과 차별이 없게 된다고 성과주의의 인사제도와 임금제도를 추진해 왔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성과연봉제도, 지난해 문제가 됐던 임금피크제도,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제 개편도, 그리고 성과퇴출제도 모두 따지고 보면 노동자가 연봉 1억원이 뭐냐, 노동자가 정년까지 고용 보장이 뭐냐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런 비난의 말에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조합은 잔뜩 위축이 된 채로 수세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1억원 연봉은 아니라며, 과장됐다고 급여명세서를 보여 주고, 정리해고·희망퇴직과 명예퇴직으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기 어렵다고 변명하기 바쁘다. 현대중공업과 갑을오토텍 노조만이 이런 변명을 한 것이 아니었고, 현대자동차도 유성기업도 귀족노조라는 비난 앞에 노조는 그랬다. 그런데 노동자는 1억원 연봉을 받아서는 안 되는가. 노동자는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면 안 되는가. 언제까지 사실은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실제로는 높은 고용을 보장받고 있지 않다는 변명으로 귀족노동자가 아니라고 대응할 것인가. 이대로면 내년 임단협 투쟁시기에도 이 나라 노조는 그럴 것이다.

3. 이 나라에서 비교적 고임금과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은 대기업이다. 해마다 대규모의 순이익을 벌어들여 현금자산 보유 등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 주주에게 하는 배당액도 많다. 지난주 내가 통상임금사건 재판을 다녀왔던 사업장 한 곳은 해마다 1조원 가까이, 다른 사업장은 2조원 안팎의 당기순이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들 사업장만이 아니다. 규모는 달라도 비교적 높은 임금과 안정된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은 노동자에게 그것을 보장하고도 남는 경영지표를 실현해 왔다. 어찌 보면 보장하고 남는 경영지표를 실현해 왔기 때문에 사용자회사는 존속하고 있다. 노동자가 일해서 실현한 것을 노동자의 몫으로 차지하지 않으면 그들의 몫이 커질 뿐, 비정규 노동자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용자회사든, 주주든 그들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들의 몫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정의는 이 나라에 없다. 그런 세상이라면 귀족노조라는 비난은 정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나라는 아니다. 그런데도 정의 없는 나라에서 파업하는 노조를 귀족노조라고 말한다면 노동자의 몫을 빼앗아 사용자의 몫으로 하고자 하는 자본을 위한 선전공세일 뿐이다.

4. 오늘 이 자본의 세상에서 문제는, 노동자권리가 우월하게 보장된 이른바 선진 나라의 노동자들이 더 높은 권리를 위해서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권리조차 지켜 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운동은 비난을 받는 것이지, 그들이 너무 높은 노동자권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다른 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든 뭐든 오늘 세계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위한 투쟁을 찾아보기 어렵다. 법과 협약에 기재된 것을 지켜내는 데 급급하고, 그마저도 자본과 권력의 삭감 공세에 완강히 버티는 투쟁은 드물다. 노동시간단축은 더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되지 못하고 있고, 해고를 사용자의 자유목록에서 삭제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고서 고용을 보장받고자 하는 노동운동의 나라는 없다.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귀족노조 문제는 자신들이 할 수가 있는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단축, 통상임금 쟁취, 고용보장 확보, 그리고 새로운 노동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정말 자신들이 할 수 있는데도 편안한 교섭과 투쟁에 연례적으로 주저앉아 있다. 가장 선진화되고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이들이 주저앉아 있다는 게 이 나라 노동운동의 문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조직력과 투쟁력을 가지고 사력을 다했다면 벌써 쟁취해 냈을 노동자권리인데도 아직도 그저 연례적으로 노조의 임단협 요구사항으로 해서 교섭하고 투쟁하다 쟁취하지 못하고서 어중간하게 마무리하는 걸 투쟁이라 말해 왔다. 그리고 귀족노조라는 비난에 사실은 귀족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확보한 노동자권리가 별 볼 일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노조의 말대로 연장·휴일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니 “기본급과 수당을 합쳐 평균 210만원에 불과”하고, “잔업이 늘어나 잠시 연봉이 늘어난 것뿐”이라면 심각하다. 수십년을 조합원의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겠다고 민주노조 간판으로 달려왔건만 조합원의 임금 등 권리 수준이 너무도 형편없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고작 이 정도라면 그것은 노조가 조합원의 임금 권리를 위해서 제대로 한 일이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조합이 지금까지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초과근로수당으로 조합원·노동자의 임금 권리를 위한 임단투를 전개해 왔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노동조합으로서 쟁취해야 할 노동자권리를 포기해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라면 조합원이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주간으로 일하고서 생활 가능한 임금 수준을 권리로 쟁취해 줘야 했다. 노조라는 제 이름에 침을 뱉는 변명의 말이다. 노조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변명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5.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노동자권리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노동자는 임금 등 권리 수준이 높다고 비난받을 일이 아니고, 노조 조합원은 자신이 쟁취한 노동자권리 수준이 높다고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그러니 오늘 이 나라에서 조합원의 노동자권리가 높다고 귀족노조라고 자본과 권력이 비난한다면 노조는 사실은 그렇지않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할 일이 아니다. 자신이 쟁취한 권리와 아직 쟁취해 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확보해 내기 위해 투쟁으로 말할 일이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투쟁의 일은 노조의 일이다. 변명은 노조의 일이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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