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공공·금융, 대우조선해양, 공무원노총, 강사. 얼핏 보면 이들 사이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매우 가까운 사이다. 바로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면서 가장 가까이서 이웃하는 조직들이다. 어떤 조직은 수년째, 어떤 조직은 수개월째 천막에 의지하고 있다.

지난주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 천막을 방문했다. 누군가 “요즘처럼 천막이 많은 적이 있었나요” 하고 물었다. 대부분의 의견은 갈수록 천막이 늘어난다는 데 모아졌다. 천막 개수보다 더 많은 것은 집회 횟수다. 집회 종류와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전국 원예농가에서 “김영란법으로 영세한 원예농가가 극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줄지어 늘어선 천막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어디 국회 앞만인가. 세종시도 이미 대표적인 천막농성과 집회 장소가 됐다.

국회 앞에 천막을 친 각자의 생각이 모두 정당하다거나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깊이 따질 생각은 없다. 노동자와 농민, 교수와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업을 접어 두고 천막에다 농성을 이어 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원인을 찾고 싶을 따름이다. 천막과 집회는 정점에 이른 갈등의 상징이다.

어떤 이들은 이해가 충돌하면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하거나, 그래도 안 되면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지 무작정 천막농성과 집회를 하면 되느냐고 반문한다. 무고한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경청할 만한 지적이다. 하지만 온전한 지적은 아니다. 단순하게 접근해 보자. 점점 더, 그것도 급격히 늘어만 나는 천막 숫자는 이미 갈등 해소를 위한 자정기능이 떨어졌다는 유력한 근거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고 갈등 해소에 적절한 제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천막 개수와 집회 횟수는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은 그 자체로 사회발전에 엄청난 장애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 갈등지수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굳이 경제적인 수치로 환산하지 않더라도 갈등하는 사회와 건강한 사회는 조화되기 어렵지 않는가.

갈등이 자율적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강제로 조정되는 경우는 더 문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너지는 경우는 그 결과물이 아무리 크더라도 상대방에게서 자발적인 ‘수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갈등의 지속일 뿐이다.

특히 노동현안은 갈등 해소가 아닌 갈등 지속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한 주간 있었던 대표적인 예로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1심에서의 중형 선고와 기한을 넘긴 내년 최저임금 결정 문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판결이다. 1987년 이후 집회를 이유로 내린 법원의 형량 중 최고라는 평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물론 유엔조차 한 위원장에 대한 구금과 형사처벌을 비난했는데도 법원은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노동기본권과 집회의 자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초로, 갈등을 유발한 자가 누구인지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고로 노동문제가 대화와 제도로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은 사라졌다. 충격과 파장을 감안한다면 노동규범이 재작동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러한 갈등 수준을 감안한다면 최저임금 결정도 파행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에도 애초 기한은 넘겼지만 큰 틀에서는 노·사·공익의 합의가 있었다. 올해는 8월5일 장관 고시가 예정돼 있지만 다음주에도 최저임금이 결정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300만명에 육박하는 최저임금 적용대상 노동자들의 동의와 일반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될 가능성이 없다면 노동계 대표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천막을 세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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