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5월3일 화요일 출근길.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 정문이 경찰에 의해 봉쇄돼 있었다. 사무실에 출근해 천안지청을 내려다보니 주차장이 경찰버스와 병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본 중에 최대 규모였다. 무슨 일일까.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천안지청 앞 집회소식은 없었는데. 궁금했다.

몇 시간 뒤 궁금증이 풀렸다. 천안지청이 그날 오후 2시께 경찰 병력에 둘러싸인 채 올해 4월14일 자주성과 독립성이 결여돼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무효 판결(1심)을 받은 유성기업 제2노조 간부들이 만든 유성기업 제3노조(제2노조와 위원장·부위원장·사무처장이 동일인물)에 설립신고증을 교부한 것이다.

아마도 천안지청은 제3노조에 설립신고증을 교부하면, 분노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를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천안지청에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리라. 경찰은 5월5일 어린이날까지 2박3일 동안 천안지청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유성기업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걸까. 다시 궁금해졌다.

지난달 29일 궁금증이 풀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2012년 11월14일 유성기업을 압수수색한 대전노동청 천안지청의 내부결재 수사보고서 전문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2. 11. 14. 유성기업㈜ 압수수색 문건 분석 결과>

○ 창조컨설팅 2011. 5 비상대책조직운영계획

○ 현대차 제출용 ‘조합원 확보 방안’의 내용 중 유성기업노조(제2노조)의 조합원 확보를 위한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기획됐음을 알 수 있음

○ 피의자의 지배·개입에 의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에 충분함

○ 징계를 (중략)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징계 및 인사고과 등을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활용하였음을 명시하고 있는 (중략) 부당노동행위 증거자료로 명백히 확인됨

○ 관리직 사원들의 (중략) 피의자들의 지배·개입에 의한 것이었음을 입증할 수 있음

○ 징계를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로 행하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음.

○ 관찰일지가 (중략)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볼 수 있음

○ 압수 문건의 내용에 의하면 (중략) 실제 사실관계를 명확히 추정할 수 있는 자료임

○ 조직적으로 직장폐쇄기간 중 업무복귀 시도 명확히 알 수 있음.

○ 밀착감시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음.

○ 승진·징계 등을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활용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음

○ 부당노동행위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함

○ 신설노조 가입에 영향을 줬다는 점을 언급하는 등 부당노동행위의 근거자료로 활용 가능


압수수색 보름 뒤인 2012년 11월30일 담당 근로감독관에 의해 작성되고 지청장 내부결재까지 마친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검찰과 노동부는 압수수색을 실시해 모두 22건의 범죄사실 관련 자료를 확보했고 부당노동행위 증거가 명백하다고 기록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증거불충분 내지 혐의 없음을 이유로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이 2013년 12월30일 불기소 처분한 것이다.

유성기업지회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반발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고, 2014년 12월31일 대전고등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여 유성기업 대표이사 외 4명에 대한 공소제기가 결정돼 현재까지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290명은 사측으로부터 1천300여건의 고소를 당해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 조사를 받고 징계 처분됐다. 거의 대부분 무혐의와 부당징계로 판정됐지만, 수년에 걸친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나머지 우울증 등 심신이 피폐해져 그중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다시 또 궁금해졌다.

이 궁금증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풀릴 것이다. 진짜사장이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재벌기업 현대차가 유성기업 사태의 뒤에 있기 때문이라는 유성기업지회 주장이 사실인지를 판가름할 만한 단서들이 끈질긴 투쟁과 세상의 관심 속에 점차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으니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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