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나누고 양보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세상이 유토피아가 아닐진대 경제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은 으레 있기 마련이다. 경쟁이 판치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이다. 오로지 나뿐인 나쁜 세상이다. 사람이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단됐고, 주변부는 신음하고 있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조차 질서에 물들어 있다. 이런 난장판에 먼저 나누고 양보하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사람’을 ‘노동자’로 바꾸면 노동운동이 시끄럽다. 가령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액 중 일정 비율을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를 위한 기금으로 쓰자고 하면 ‘정규직 양보론’이란 비판이 나오고 "정규직 노동자는 투쟁으로 연대하라"는 훈수가 따른다. 구설에 휘말리는 것이다.

우리는 1년 전 참혹한 기사를 접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관련 평균연봉 실태였다. 광주공장은 정규직 9천700만원에 사내하청 5천만원, 1차 협력사는 정규직 4천700만원에 비정규직 3천만원, 2차 협력사는 정규직 2천800만원에 비정규직 2천200만원이었다. 계단이었고, 위와 아래의 차이는 5배에 육박했다. 숨이 막혔다.

물론 답은 있다. 연대임금·최저임금·사회임금에 노동시간단축이다. 거기에 주변부는 해마다 10% 이상 인상을 위해 투쟁하고, 중심부는 현재 인상률에 멈추고 주변부 투쟁에 연대한다. 그러면 언젠간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자는 엇비슷한 연봉에 이를 것이다. 좋은 그림이다. 한데 공허하다.

투쟁으로 쟁취하자고? 지당한 말씀이다. 노동운동에서 ‘투쟁’은 일부 기독교단의 ‘예수천국’ 같은 경지에 올랐는데, 어찌 감히 토 달 수 있겠나. 그러나 예수를 아무리 팔아도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듯, 투쟁만 주장해선 노동분단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주변부 노동자는 빡세게 투쟁하지 못한다. 중심부 노동자는 투쟁으로 연대하지 않는다. 어떤 의견그룹도 사활 걸고 투쟁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정규직 임금은 해마다 3~4%대로 인상되고 비정규직과 하청 임금은 1% 안팎으로 오른다. 노동 내부의 금수저 흙수저 현상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노동자계급끼리 전쟁을 벌이는 암담한 상황이 전개될 터다.

김성락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의 실험을 지지한다. 지난해 말이었다. 회사는 300만원 상당 주식 20주를 정규직에게만 성과급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에 지부는 반발했고, 더 나아가 정규직의 몫을 나눠 행복한 동행을 하자고 조합원들에게 제안했다. 작금의 운동풍토에선 뒤통수가 켕기는 구상이다. 실패했지만, 감히 꺼냈다는 것만으로도 경의를 표한다. 두 번째는 진행형이다. "정규직 성과급의 일부로 나눔과 연대기금 50억원을 조성하자"는 안을 대의원대회에 제출했다. 노동자 차별해소에 자본과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화두를 던지려면, 정규직이 먼저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성락의 실험은 확산돼야 한다. 현대차와 철도를 비롯한 중심부 노조들에서 다양한 실험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민주노조가 산다. 재벌 곳간을 열라는 우리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국민 다수는 재벌을 미워하지만 우리도 신뢰하지 않는다. 골목이나 장터에 가서 진솔하게 술 한잔 나눠 보라. 그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뭐라 하는지.

전태일 정신은 헌신과 결단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낮은 곳을 향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놨던 정신도 있다. 배곯는 시다들에게 차비로 풀빵을 사 주고 2시간이나 걸어 귀가했던 전태일의 풀빵정신을 누가 감히 재단사 양보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