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공사노조와 광물자원공사노조가 지난 20일 서울 역삼동 해외자원개발협회에서 열린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방안' 공청회에서 개편안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공공노련

정부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통폐합하고, 해외자원개발 기능 민간이관과 자원개발 전문기관 설립을 골자로 한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해당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학계와 민간기업에서도 "해외자원개발 분야에서 공공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정부가 단기재정 위험을 털어 내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대안만 제시하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역삼동 해외자원개발협회에서 개최한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방안 연구용역 결과 공청회'에서다. 이날 공청회는 정부가 5억원을 들여 발주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하는 자리였다.

안진회계법인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석유공사 개편방향은 △석유공사의 석유 자원개발 기능을 민간에 팔거나 △석유 자원개발 전문회사를 설립하거나 △석유공사의 자원개발 기능을 가스공사로 넘기거나 △두 공사를 통합하는 방안 등 네 가지로 요약된다. 업계에서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통폐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고서에는 광물자원개발 전문자회사를 새로 만들거나 자원개발사업에 민간이 참여하는 내용의 광물자원공사 개편안도 담겼다.

◇공기업·민간사업자·전문가 한목소리 비판=에너지 공기업 3사는 이 같은 개편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재웅 석유공사 기획예산본부장은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행 과정상 오류로 부채가 늘어났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단기적인 손실과 부채를 이유로 전략비축물자인 석유개발의 당위성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석유개발사업은 규모가 크고 장기적인 투자와 정책적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특성 때문에 민간사업자가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원개발 분야를 합병하고 기관을 쪼개는 것이 아닌 공공기관의 역량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고호준 가스공사 해외사업처장은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통합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 처장은 "두 기관이 통합되면 규모의 확대나 자원개발 중복부문에서 일정한 효과가 있겠지만 국제유가 회복과 기관 자체적인 재무위기 극복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합기관 부실화를 야기할 수 있다"며 "해외자원개발 리스크가 한 기관에 집중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정기 광물자원공사 기획관리본부장은 "일본과 중국이 해외자원개발에 총력을 쏟는 상황에서 공공부문 기능을 무조건 축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민간기업들도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응규 LG상사 석유사업부 상무는 "해외자원개발 분야는 공공과 민간이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며 "민간은 장기투자가 어려운 만큼 공공기관이 충분히 역할을 해 줄 때 민간 상황도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성욱 포스코 원료그룹장은 "포스코는 20년 전 투자한 브라질 광구에서 10년간 손실을 봤으나 그 이후에는 투자금액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원개발투자는 단기실적이 아닌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에너지자원공학)는 "자원비축의 당위성 측면에서 핵심 개발사업을 민간으로 이관하라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며 "해외자원개발이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만큼 정책적 일관성을 갖고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정책 실패를 공공기관에 떠넘기나"=석유공사노조와 광물자원공사노조는 이날 공청회 안팎에서 "해외자원개발 실패를 공공기관 구조조정으로 돌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김병수 석유공사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이해와 고민 없이 공기업의 단기적 재무위기 해소를 위해 자산매각과 통폐합을 운운하고 있다"며 "해외자원개발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면 보다 근본적인 검토와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공공노련은 다음달 8일 국회에서 석유공사노조·광물자원공사노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국가 해외자원개발 진단과 과제' 토론회를 열고 해외자원개발에서 국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중심으로 바람직한 해외자원개발 방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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