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올해도 나는, 학생회 등이 주최하는 스승의 날 사은행사에 민망하게 앉아 있었다. 오늘의 대학 현실에서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도 될 수 없거니와, 법적으로 ‘교원’도 아닌 유령 같은 존재인 ‘시간강사’로서는 참으로 어색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대학은 가치가 뒤바뀐 우리 사회의 요지경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다.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8만여명의 비정규 교수들은 시간강사·겸임교수·강의교수·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고용불안과 열악한 처우, 전망 없는 삶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 본연의 상시적 업무를 담당함에도 근로계약 기간만료 통보로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기간제 또는 시간제 노동자들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등에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 노동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사학위 등 전문자격을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일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노동법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약하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비정규 교수들은 강의시간 부여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교수 또는 대학당국에 목숨줄을 내맡기고 있다. 일방적으로 시간강사 113명의 계약기간을 1년으로 줄여 집단해고를 유발한 서울대 음대 사례가 단적인 예다.

재계약 여부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비정규직들은 열악한 처우나 인권침해에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된다. 특히 대학처럼 일정한 자격과 역량을 가진 구직자는 넘쳐 나고, 교수(사용자)에게 찍히면 아예 그 직업사회에서 파문당하게 되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201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89개 4년제 대학 시간강사의 평균 연봉은 603만원으로, 평균 연봉이 4천290만원인 정규직(전임강사)의 14%에 불과하다. 보통의 전업 시간강사들이 강의시간당 4만원 정도로 1주에 1~2개 과목(3~6시간)을 담당하고 얻는 수입은 한 달 60만~70만원 정도다. 2개 이상의 대학에서 서너 개 강의를 맡아야 겨우 법정 최저임금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동종·유사업무를 하는 전임강사에 비해 차별을 당한다고 구제를 받을 수도 없다. ‘강의’ 또는 ‘연구’만 담당하는 비정규 교수들은 학교의 행정업무 등에 참여하는 전임강사(교수)와 동종·유사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본 노동위원회·법원의 판정례가 즐비하다.

대학으로서는 정규직(교수)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싼 비정규직들로도 동일한 수준의 강의와 연구를 수행할 수 있으니, 굳이 정규직으로 충원할 이유가 없다. 교육부 등이 주도하는 각종 대학평가에서 법정전임교원 충원율은 그다지 중요한 기준이 아니니 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비정년트랙 교수’로 불리는 비정규 교수의 경우 전임교원 충원율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대학이 이들 ‘저가교수’로 충원율을 채우려는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라 기간제 노동자 중 일부를 또 다른 비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했다고 오도하는 것과 똑같다.

노동유연화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가설 중에, 입직(채용)경로가 정규직과 다른 비정규직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정규직과 ‘다른’ 기준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했으니 이들 ‘열등한’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다른’ 업무를 담당하므로 이들을 달리 대우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비정규 교수의 사례가 보여 주는 것처럼, 정규직과 ‘다른’ 채용경로를 만들고, 정규직과 ‘다른’ 업무로 제한하는 것은 사용자다. 그렇게 하는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차별과 불안을 감내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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