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미아리 점집촌에 돗자리를 깔아도 될 수준의 몇몇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총선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들, 그러니까 운동진영은 큰일 났다고 아우성쳤다.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가릴 것 없었다. 새누리당이 무난하게 과반을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더 나아가 국회 단독입법 마지노선인 180석을 넘길까 말까 근심했다. 그렇게 우리는 국민 정서를 읽지 못한 채 절망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우리의 정세 분석은 거의 언론기사에 의존했고, 운동 공간은 주로 광장이었다. 밑바닥 삶이 살아 요동치는 골목과 장터에서 분리돼 있었다. 노동운동도 5% 노동자의 현장에서 좀체 확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읽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이 점을 극복하는 것이 2016년 4·13 총선 결과가 운동진영에 던진 첫 번째 숙제다.

아무튼 여소야대, 여의도가 뒤집히고 청와대가 흔들렸다. 새누리당은 다수당의 지위마저 빼앗겼다. 선거 다음날 활동가들 얼굴엔 화기가 돌았다. 고소하고 달콤했다. 그러고서 한 달이 지났다. 운동은 새로운 걱정에 빠져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때문이다. '책임지는 의정활동'이란 명분으로 우경화될 가능성이다. 신자유주의 판을 깔고 닦은 김대중·노무현 시대처럼 행동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리되면 다른 운동은 몰라도 노동운동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 것이다. 특히 구조조정 국면에서 3당 모두 노동의 고통을 강제할 것이다. 가뜩이나 수세에 처해 있는 노동운동이 사회로부터 더욱더 고립되는 결과로 고착될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영특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두 번째 숙제다.

여소야대를 점치지 못한 운동진영이 신기하게도 진보정치의 결과는 정확히 맞췄다. 선거 일선에서 고생한 동지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활동가 대부분은 노동당과 녹색당·민중연합당의 원내 진출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정의당은 6석 안팎으로 예측했다. 정의당이 진보정치의 충실한 전략세력인 노동·농민·빈민·상인 등 기층 대중조직 흐름과 궤를 같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과 예측은 식은 죽 먹기였다.

4·13 총선 전엔 민주노조 현장에서 진보정치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진보정치의 ‘진’자만 나와도 듣기 싫다며 비난하고 냉소했다. 그 틈을 두 보수야당이 파고들어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상당하게 빼앗아 갔다. 진보정치의 두 차례 분당과 분열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총선 후 이제 뭐라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문이 현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통합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귀에 박히도록 커졌다. 창원의 노회찬과 울산의 김종훈·윤종오 당선이 만든 현상이다.

아니, 그들과 같은 노선이 아님에도, 사안만 발생하면 티격태격했던 흐름임에도, 그전 같으면 팔짱 끼고 수수방관했을 것이 분명함에도, 후보 못지않게 혼신을 다해 선거운동에 복무한 민주노총 경남본부 김재명 집행부와 현대자동차지부 박유기 집행부, 현대중공업노조 백형록 집행부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박유기는 ‘당선하면 후보와 선대본의 공’이고 ‘낙선하면 자신과 현대차 집행부의 과’라는 각오로 선거운동에 임했다. 총선공투본 합동유세단의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천영세·단병호·최순영 등은 창원과 울산에서 그것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런 그들의 결심과 투지가 노동정치를 복원하고 진보정치를 통합하라는 발전적 흐름을 현장에 만들었다. 모두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 점을 유실하지 않고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4·13 총선 결과가 진보운동에 부여한 세 번째 숙제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의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험난할지 잘 안다. 겨우 6석이지만 정치의 힘은 정의당에 있다. 변혁당과 노동당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민중연합당에 대한 반감도 크다. 그래서 소통합·중통합·대통합에 대한 활동가들의 생각이 제각각이다. 노·농·빈 대중조직들이 나서 크게 통합하면서도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단위를 존중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숙제이기에 조심조심 가야 한다.

한편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는 후보가 후순위로 밀린 것은 노동운동엔 적잖은 충격이었다. 정의당에서 노동이 어떤 위상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도 받아들였다. 당원이든 아니든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의문을 가졌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 할 뼈아픈 대목이다.

끝으로, 어떤 이가 정의당의 겨우 4석 비례의원 중에 인천연합세력이 2석씩이나 차지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들의 당선은 낡은 껍데기를 스스로 벗기는 치열한 성찰의 대가였다. 그들은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다시는 자민통 패권을 부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노력했다. 또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 때에도 결단하고 단절했다. 그 결과물이기에 축하받아 마땅하다. 이정미·윤소하 당선자에게 축하인사를 전한다.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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