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문제와 관련해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지부장 김성락)의 의미 있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지부는 올해 초 임금교섭에서 "사내하청에게도 정규직과 같은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시한부 파업을 벌였다. 기아차가 정규직에게만 회사 주식 50여주를 지급하겠다고 밝히자 지부가 발끈해 벌어진 사건이다.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을 주축으로 하는 노조가 보여 준 이례적인 일로 기록됐다.

당시 지부는 회사가 성과급 차별을 강행할 경우 정규직 몫을 나눠 갖자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정규직 성과급 분배는 대내외 저항에 부딪쳐 실현되지 못했다. 일부 사내하청 현장 활동가들은 "정당한 권리를 자본에 구걸해서 받거나,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받을 수는 없다"고 거부했다.

김성락 지부장(52·사진)은 "집행부 출범 후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 조합원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며 "사내하청 동지들과 토론이 부족했던 것도 성공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계를 시인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지부장에 당선됐다.

지부는 9일부터 올해 임금·단체협약 요구안을 논의하는 대의원대회를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대의원대회에 '나눔과 연대기금 결의 안건'을 상정했다. 올해 정규직 성과급 중 일부 금액을 모아 5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비정규직 조직화사업에 사용하자는 제안이다. 안건이 통과되면 사측에도 기금 출연을 요구할 방침이다.

김 지부장은 "기금을 조성하면 원·하청 불평등을 확대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회사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며 "정규직·비정규직 차별해소에 자본과 정부·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화두도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9일 오전 경기도 광명 기아차 소하리공장 지부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대기업노조 사회적 고립 탈피방안 고민해야"

- 임금·단체협약 노조 요구안을 논의하는 대의원대회에 나눔과 연대사업 기금 결의 안건을 제출했는데.

"전태일 열사는 먼 길을 걸어 출퇴근을 하면서 아낀 돈으로 풀빵을 사서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나눠 줬다. 정규직이랄 수 있는 재단사였지만 시다라고 불리는 노동자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연대를 실천했다. 대기업노조·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기업노조의 사회적 고립을 탈피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는 기금을 마련하고 싶다."

- 정규직들이 기금을 모아 비정규직을 지원한다는 얘기인가.

"지난해 임금협상을 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성과급 차별을 해소하라고 회사에 요구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부가 새로 출범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와 노조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 보려 한다. 정규직이 성과급 일부를 모아 조성한 기금을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사업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에 쓸 계획이다. 쌍용자동차 같은 민주노총 투쟁사업장은 물론이고 독립유공자 자녀돕기 등을 실천해 지역사회에서 지부의 역할을 높여 나가자는 목표를 세웠다. 자동차 노동자들은 그동안 산업성장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이제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나눠야 한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기금 조성이 결의되면 이후 지부 정기사업으로 배치해 매년 정기적으로 기금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 기금 조성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임기 내 성과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노조 사업으로 정착되고 기금 규모가 커지면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회사가 의도적으로 원·하청 불평등을 확대하면 지부가 기금을 통해 불평등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은 단체협약이 취약한 탓에 복지혜택도 적게 받는다. 기금으로 장학금 사업 등을 진행하면 부족한 단협을 메울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문제로 지적되는데, 책임이 가장 큰 자본과 정부·정치권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귀족노조가 문제라고 비판한다. 기금 사업을 통해 노조보다 더 큰 책임을 가진 자본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사회적 화두를 던지고 싶다."

정기훈 기자

"주간연속 2교대 올해 다시 추진"

- 주간연속 2교대(1·2조 각각 8시간 근무) 노사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됐다.


"지부는 노동시간단축으로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을 근무형태변경 논의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노동강도를 최소한으로 올리기로 합의하면서 월 수만원의 임금삭감이 발생했는데, 삭감 폭이 연간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졌다. 지부도 근무테이블에 합의하면서 조합원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실수를 범했다. 2조 중식시간을 기존 40분에서 30분으로 줄인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컸다. 근무형태변경을 위한 시설 증설작업이 하계휴가와 추석에 이뤄진다. 올해 안에 주간연속 2교대를 도입하기 위해 사측과 재협상을 하고 다시 한 번 조합원 총회에서 의견을 묻고자 한다. 조합원들이 임금보전과 노동강도 완화 중 어느 것을 더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해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지부는 노동강도 완화라는 주간연속 2교대 도입의 기본취지를 최대할 설명·설득할 것이다. 이달 중으로 논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옛 국가인권위원회 광고탑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조만간 1년이 된다. 불법파견 특별교섭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

"불법파견 문제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정규직 중심으로 합의하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사내하청 분회장들이 최근에 새로 당선됐다. 특별교섭에 이들 분회장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 명의 신임 분회장들에게 단일한 의견을 갖고 특별교섭에 임하자고 말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올라간 두 명의 동지들은 특별교섭 결과를 보고 내려오겠다는 입장이다. 불법파견 문제를 사회적으로 충분히 부각시켰으니 건강을 생각해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고공농성을 중단할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 지부장 입장에서 미안한 심정이 크다. 고공농성에 따른 벌금이라도 책임지라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아예 귀를 막고 있다. 답답한 심정이다."

"현대차그룹사 공동교섭,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 관심 제고에 도움"

- 금속노조가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그룹사공동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지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그룹사 노사관계는 현대차 본사가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사실상 형해화돼 버렸다. 현대차 노사의 협상 결과를 놓고서야 다른 사업장에서 대화가 가능한 실정이다. 이런 노무시스템을 이번에 무너뜨려야 한다. 성장의 과실을 쓸어담고 있는 재벌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연맹 시절로 회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룹사 노조들이 공동행동을 통해 재벌에게 책임을 묻고, 이 행동으로 성과가 나온다면 금속노조도 강화될 것이다."

- 그룹사 공동교섭이 성사되지 않으면 산별노조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을 것 같은데.

"그룹사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단일대오를 구성해 투쟁하면서 자신감을 갖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언제든지 공동행동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면 자본도 자기들이 추구하는 일을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못할 것이다. 개별사 노조는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 정책과 임금피크제 강행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통상임금도 임금제도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단일사업장 이슈가 아니다. 이 같은 공동의제를 가지고 내년 이후까지 싸움을 전개할 것이다. 금속노조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룹사 차원에서 공동행동을 하면서 금속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을 높여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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