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6일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협의체’를 개최하고 조선·해운업종을 중심으로 한 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채권단이 주도하는 자산매각, 인력감축이 주요 내용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채권단이 개별기업 구조조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한다는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이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도 구성을 앞두고 있다. 협의체 역할이 사후약방문에 그칠 거라는 우려도 있다. 올바른 기업 구조조정 방향은 무엇일까.


‘경제위기 주범’ 재벌에게 책임을 물어야

▲ 이승철 민주노총 사무부총장

총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구조조정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현재의 구조조정은 단순히 한두 개 부실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재벌 독식구조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업종의 경우 소위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한두 개 재벌대기업 위주로 업종 전반을 재편하는 구조조정이 지난 수년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재벌 독식구조의 강화와 함께 경제위기와 경영실패의 책임을 모조리 노동자가 떠맡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기를 불러온 사용자가 경제위기와 경영실패의 책임을 졌다는 소식은 들을 수가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 전현직 최고경영진들은 “수조원대의 부실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이를 감독해야 할 의무를 지닌 산업은행도 부실이 심화되는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진과 국책은행의 이 같은 과오를 왜 노동자들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지 정부와 정치권은 똑똑히 답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와 경영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구조조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기업 경영상 위기, 나아가 국민경제 위기를 초래한 기업과 경영진에게 우선 책임을 묻고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나누기 △제조업강화특별법 제정 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동자에게 “기업애로 해소”로 답한 정부

▲ 김준영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

우리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후유증을 앓고 있다. 27명의 노동자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을 곱씹으며 구조조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력감축부터 이야기하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을 보며 걱정을 넘어 분노가 차오른다.

정부가 내놓은 구조조정 해법도 결국은 노동 4법 통과다. 실업대책이 어떤 실효성을 갖는지 입증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과관계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밑도 끝도 없이 노동 4법의 신속한 처리를 이야기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치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기업의 애로 해소”라는 답을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해고는 최후의 수단이고 최소화해야 한다. 조선업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업종이니 퇴출시키자는 것이 아니라면 이 기회에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자들의 기술력을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면서도 기술집약 산업인 조선업의 무차별적 인력감축은 회생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안 그래도 위축되고 있는 소비를 더 위축시켜 내수 회복 말고는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에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는 방향만 제시하고 채권단에게 구조조정 방안을 내라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기업 내에서는 노사가 함께 논의 틀을 만들고, 지역과 국가차원의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노사단체가 참여하는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라는 기준을 가지고 논의하자. 사회적 합의 없는 구조조정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실행과정에 저항만 초래할 것이다.


사회적대화기구 설치해 시기·방법·규모 논의 필요

▲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선 구조조정이 2009년 쌍용자동차처럼 진행돼서는 안 된다. 몇 년 전부터 시그널이 있었는데 노사도 정부도 안일하게 준비한 듯하다. 심상치 않은 상황은 맞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보험이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다. 추가 대책이 필요한데 고민도 없고 논의되지도 않았다. 채권단·정부 중심으로 가면 정리해고 대책이 빠질 수 있다.

구조조정은 사회적인 협의를 통해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회적 협의는 공무원연금 개혁할 때 구성했던 국민대타협기구 모델이 좋을 것 같다. 노사정만 아니라 국회도 들어갈 것이다. 구조조정은 정부와 채권단, 해당 기업 노사, 사내하청, 지자체와 전문가가 참여해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하는 게 맞다. 구조조정 시기나 방법·기준·규모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구조적 위험을 사회화하는 게 필요하다. 정리해고된 사람들에게만 부담을 전가하면 안 된다. 고용보험이 충분하지 못한 만큼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조조정 기금을 만든다든지, 일자리 나누기를 하면 지원한다든지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내하청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 사람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볼 텐데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경영실패를 했든, 감췄든 경영진을 문책하거나 책임을 묻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근로자들도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시장 자체가 없어지거나 지속가능하지 않은 업종의 경우 구조조정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 대신 정부는 경기순환요인에 따른 구조조정은 최소화해야 한다.


공개·공정·공평하게 선정해야 납세자들 납득

▲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조선·해운·건설 등에서 한계기업으로 지목된 대기업 부실은 원인이 세계 경제불황이 아니다. 기업 경영자들, 특히 대주주와 그 일가들이 저지른 불법과 경영 실패, 그리고 경제관료들의 묵인과 방조가 원인이다. 지금 구조조정은 그런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챙길 것은 챙기는데 국가가 나서서 부실을 막아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 회사채를 매입한 사람들도 재산상 피해를 볼 것이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주문하는데, 이런 식이면 과거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처럼 노동자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만 고통을 주는 정책이 예상된다.

부실 책임자는 과거처럼 다 빠져나갈 게 뻔하다. 재산은 찾아내 혈세를 줄이고 형사처벌할 것은 해야 한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 탓도 크다. 과거처럼 구조조정 연후에 헐값으로 우량자산을 투기자본에 팔아넘기거나 원래 대주주나 재벌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생산과 고용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 방법은 국유화다. 독일의 폭스바겐, 프랑스의 르노, 미국의 GM은 이미 널리 알려진 국유화 사례다.

어떤 기업을 살리고 죽일지, 어떤 산업이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선정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거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 논리에 흠뻑 빠져 있는 관료 몇 사람이나 정치권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노동자를 희생해서 위기를 탈출하자고 할 것이다. 노동자·소비자·시민사회 대표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부담을 질 사람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구조조정 대상은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하고, 공평하게 선정해야 한다.


구조조정 필요하지만 ‘숙련인력 유지 방안’ 절실

▲ 정흥준 고려대 경영대학 BK연구교수

조선업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조선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부상하면서 산업 조정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조선업은 유럽에서 일본으로, 우리나라로 왔다가 중국으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조선업 경쟁력이 완전히 추락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조선업은 숙련인력이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산업처럼 설비가 자동화된 게 아니다. 배 한 척을 건조하려면 숙련된 인력이 대규모로 투입돼 몇 년간 일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러한 숙련인력을 잃어버린다면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하는 꼴이 된다. 구조조정은 일정한 산업조정을 거쳐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숙련인력을 잃어버린다면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업 경쟁력은 숙련인력에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국 사례를 보면 정부가 숙련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생계비를 지원하면서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최소 1년에서 최대 2~3년간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해 숙련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고용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경영진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조선업 불황은 이미 3~4년 전부터 예견됐다. 그에 대비하는 책임 있는 경영진은 없었다. 경영진 책임을 물어야 노동자들도 고통분담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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