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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노동 호민관'을 만나다] "소득주도성장·남북경협으로 잘못된 재벌 중심 경제체제 바로잡을 것"김경협 더불어민주당 후보(경기 부천원미갑)
▲ 김경협 후보 선거사무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회의원선거는 더욱 그렇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선 친노동 후보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매일노동뉴스>가 '노동 호민관'을 자처하는 후보자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비전, 포부를 들었다.<편집자>

김경협(54·사진) 더불어민주당 후보(경기 부천원미갑)의 고등학교 시절 꿈은 공장 노동자였다. 그곳에 가면 기운 집안을 다시 일으킬 방법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그가 10살 때 큰 병을 앓았다. 가난은 깊어졌고 일상이 됐다. 벗어날 길을 찾다 부산으로 유학을 갔다. 선반정밀가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그렇게 공장 노동자가 됐지만 현실은 달랐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 장기간 노동에도 손에 쥔 푼돈은 이제 스무살을 앞둔 그를 두렵게 했다.

김 후보는 “내가 두 번 다시 공장에서 일하나 보자”며 얼마 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번엔 공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바라던 대학생이 됐지만 이번엔 시대가 말썽이었다. 그는 전두환 정권 출범 초기인 1982년 대학에 들어갔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학생운동을 했다. 이로 인해 2년2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감옥을 나와 스스로의 다짐(?)을 어기고 제 발로 공장을 찾았다.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학생운동을 하면서 노동운동이 자신의 철학과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후보는 노동운동을 하며 갈등중재 능력을 인정받았고, 참여정부 때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냈다. 이어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20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 후보는 “4년간 추진한 지역사업을 완성하고, 국회에서 노동자 소득과 남북경제협력을 주축으로 하는 미래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출마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7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김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진행됐다.

"돌고 돌아 되돌아온 공장"

- 선반정밀가공기능사 자격증이 눈에 띈다.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한테 큰 병이 찾아왔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치료를 하면서 ‘망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집안이 어려워졌다.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었는데, 중학교 때 선생님이 학비가 전액 지원되는 국립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진학을 권했다. 집에 돈이 없으니 응했고, 입학 후 자격증을 땄다. 공부를 하면서는 하루라도 빨리 공장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공장에서 기계를 만지면 돈을 벌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탓에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두려웠다. 과감하게 공장생활을 정리했다. ‘다시는 공장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대학 입학을 준비했다.”

- 학생운동을 했고, 노동운동에 몸담았다. 계기가 있었나.

“1982년 학번이다. 캠퍼스 분위기가 살벌했다. 전두환 정권이 광주학살을 일으키고 집권한 시기였는데 정말 기세등등했다. 대학마다 사복경찰이 깔려 있었다. 학생들이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감정에 겨워 <아침이슬>을 부르면 어디선가 사복경찰이 몰려와 우리를 마구 두드려 팼다. 그런 일이 캠퍼스 곳곳에서 숱하게 벌어져도 아무 문제없이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학원 자율화·사회 민주화 투쟁에 뛰어들었다. 4학년 1학기 때 제적·구속됐다. 학생운동을 하다 끌려온 사람들은 한곳에 갇힌다. 그 안에서 토론이 활발했다. 정치냐 대중이냐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나는 조직된 대중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믿었다.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생활을 개선하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열망을 안고 다시 공장에 들어갔다.”

김 후보는 감옥을 나온 그해 부천의 한 방위사업체 협력업체에 취업했다. 자격증이 있어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그 사업장에 노조를 만드는 것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금속을 깎으며 결혼을 하고 쌍둥이 아빠가 됐다. 그러면서 부천지역금속노조 위원장과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장, 한국노총 부천지부 의장을 세 차례 연달아 지냈다.

그가 노동운동을 하며 천착했던 주제는 “갈등의 중재”와 “거버넌스 확장”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천에서 전국 최초로 지역노사정협의회가 결성된 배경에는 김 후보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지역노사정협의회는 부천시의회가 전국 최초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하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기업 단위 노동운동은 한계가 분명하다. 사회제도 개혁까지 가려면 새로운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 노동운동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천 재생사업·경인전철 지하화 시급"

2005년 한국노총은 대통령소속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 김태환 전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이 특수고용직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던 중 레미콘차량에 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 후보는 양측 중재에 나서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이끌어 냈다. 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 후보를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으로 임명했다.

“한국노총 지역지부 의장으로 있으면서 보수정당과 야당에서 몇 차례 정치활동을 제안해 왔다. 모두 거절했다. 정치에 불신을 갖고 있었다. 정치보다 대중을 믿었다. 그런데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할 때 대통령께서 정치에 도전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바위에 계란의 흔적이라도 남겨야 세상이 변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판 뛰어들어 볼까' 생각했다.”

- 재선 국회의원이 되려는 이유를 설명한다면.

“의정활동을 하면서 겪은 정치의 위력은 생각보다 컸다. 생활임금근거법(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상태인데, 그것만으로 정부가 제기하던 시비가 사라졌다. 30여개 지방자치단체로 생활임금이 확산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결국 민생과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법이다. 근로자건강센터설치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성과다. 그렇지만 벌여 놓은 일이 더 많다. 그것을 마무리하기 위해 재선에 도전했다.”

- 지역을 위해 어떤 공약을 준비했나.

“부천이 뉴타운지구로 지정되면서 10년 동안 개발이 묶여 있었다. 임기 중반 이후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뉴타운 문제를 해결할 7개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중 5개가 통과됐다. 법률적인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이제 뉴타운지구의 재개발과 근린시설 조성 같은 도시재생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선도사업 지역 5곳을 발표했는데, 춘의·원미공업지역이 포함됐다. 향후 5년간 500억원이 투입된다. 거기에 디지털산업단지를 조성해 수도권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

제물포와 구로를 잇는 경인전철 지하화도 당면 과제다. 경인전철이 부천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있고, 소음과 교통 병목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5조원의 예산이 드는 대형 사업이지만 실현될 경우 폐선부지 100만제곱미터가 생긴다. 이곳을 활용하면 사업비의 80% 이상을 회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회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내가 강하게 주장한 사업이다. 현재 정부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반드시 실현하겠다.”

"노동문제는 경제정책이 좌우한다"

-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때는 언제인가.


“뉴타운 매몰비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처리됐을 때다. 건설사가 조합 등에 대여한 비용을 포기하는 경우 이를 손금처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법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전 재산인 집을 두고 소송에 휘말린 여러 주민들이 나를 찾아왔다.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했다. 그때가 참 뿌듯했다. 반면 국회 서민주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법제화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 당선되면 어느 상임위에서 활동할 것인가.

“잘못된 재벌 중심 경제체제를 바로잡기 위해 재선에 도전했다. 국가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소득주도성장이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올라야 내수가 산다.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키우는 동시에 가계 고정지출을 줄여야 한다. 다음은 남북경제협력이다.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등으로 100조원의 성장동력을 포기하려 든다. 남북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고민하겠다. 19대 국회 전반기에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는데, 노동의 여러 문제는 결국 정부 경제정책이 좌우한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소득주도성장과 남북경제협력을 지원하는 법과 제도를 설계하고, 정부 정책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겠다.”

김경협 후보는

- 1962년 전남 장흥 출생
- 성균관대 사회학과 졸업
- 전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 의장
- 전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
- 전 한국고용복지센터 이사장
- 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양우람  against@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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