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⑤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2.18 선고 2014가합518841 판결

1. 사건의 배경 및 원·피고 주장의 요지


대한민국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은 크게 공무원인 집배원과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의 집배원으로 구분되고, 민간인 신분의 집배원에는 상시위탁집배원·특수지위탁집배원·재택위탁집배원이 있다. 집배원들은 통상 자신들이 배달을 담당하는 담당집배구를 부여받게 되는데, 특수지위탁집배원들은 주로 산간벽지·도서 같은 교통이 불편한 지역을 담당하고 있고, 재택위탁집배원들은 주로 대단위주택단지를 담당하고 있고, 상시위탁집배원은 그 외 지역을 주로 담당한다.

재택위탁집배원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정부차원의 구조조정 일환으로 집배업무 일부를 민간에 위탁하는 과정에서 생긴 직종으로, 주로 대단위주택단지를 담당하고 있고, 하루 5~7시간을 근무하는 단시간 근무자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이들은 주로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 인접한 대단위주택단지를 담당집배구로 하고 있어, 매일매일 우체국으로 직접 출퇴근하는 부분이 생략돼 있고, 다른 재택담당집배원을 통해 매일매일의 배달물량을 담당집배구에서 직접 받아 배달하는 방식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그간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상시위탁집배원과 특수지위탁집배원까지는 노동자 지위를 인정해 왔지만, 재택위탁집배원에 대해서는 노동자 지위를 부정하며 지난 십수년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아 왔다. 그리고 지난 2013년 4월부터는 재택위탁집배원들이 사업자에 해당한다며 사업소득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재택위탁집배원 일부가 대한민국(산하 우정사업본부)을 상대로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이 위 사건이다.

2. 법원의 판단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대법원 판결(2006.12.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을 통해 확립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지위 판단기준에 관한 관련 법리를 기초로 원고들의 노동자성을 판단했는데, 그 근거로 삼은 주요 인정사실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이 사건 위탁계약에 따른 재택위탁집배원의 배달방법 및 절차는 상시위탁집배원·특수지위탁집배원과 전적으로 동일하며 ② 원고들이 집배장비나 물품을 피고로부터 무상으로 대여받아 사용한 후 해지시 장비를 반납하도록 돼 있는 점, 등기우편물의 경우 원고들이 배달결과를 PDA에 입력하면 우체국에 즉시 그 결과가 통보되므로 우체국은 이를 통해 원고들의 업무수행 상태를 알 수 있다는 점, 피고가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의 담보로 신원보증보험증권을 요구한 점 등도 상시위탁집배원과 동일하다. ③ 또한 원고들은 담당집배구를 가지고 있어서 배달물량이 많아도 이를 거부할 수 없고, 우편물의 취급종류에 따라 1~2일 내에 배달해야 하며, 우편물 배달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지연시킨 경우, 지역주민의 민원을 야기해 물의를 일으킨 때, 기타 사회통념상 위탁계약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유 발생시에는 위탁계약 해지사유가 된다. ④ 원고들은 임의로 다른 집배구로 변경할 수 없으며 ⑤ 원고들의 업무량은 매일 피고가 주는 배달물량에 따라 정해지고, 원고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고객을 유치하거나 배달물량을 늘림으로써 수입의 규모를 확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⑥ 원고들은 시간당 배달물량 또는 담당세대수 기준으로 1시간당 일정 금액을 적용한 수수료를 매월 말일에 지급받았고, 설날과 추석 명절에는 명절보로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받았으며 ⑦ 원고들이 배달업무를 할 수 없을 때는 피고에게 사유를 알려 다른 집배원이 배달했다. 피고는 원고들이 배달업무를 제3자에게 대행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나, 피고가 정해둔 배달방법이 있는 점, 송달방법과 관련해 업무교육이 필요한 사항이 있는 점, 배달관련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는 점, 배달업무시 우정사업본부 소속이 표시된 집배피복과 신분증을 착용하는 점, 금전거래를 통한 제3자 배달업무 위탁을 금지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원고들이 제3자를 고용하거나 제3자에게 배달업무를 대행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사실상 곤란해 보인다.

⑧ 또한 재택위탁집배원에 대해서도 소집교육 또는 구두나 유인물을 통한 업무교육이 이뤄졌고, 정규직집배원 등과 동일하게 문자 등을 통한 업무지시를 받았으며, 배달하는 동안 직접적인 지휘·감독이 없어도 정해진 방법에 따라 배달해야 하고, 변경된 업무지침이나 주의사항 등은 담당집배원을 통해 전달받았다. ⑨ 원고들은 하루 6~7시간을 일하고, 매년 계약갱신을 통해 길게는 12년9개월 동안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일부 원고는 계약업무 범위에 없는 우편물 순로구분작업 등도 수행했다. ⑩ 피고의 지시나 필요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는 것 외에 위임계약 내지 도급계약의 목적으로 삼기에 적합한 업무 또는 업무의 완성이 뚜렷하게 특정돼 있지도 않다.

그리고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기초로 판단하기를, “재택위탁집배원들이 재량권을 가지고 배달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물량을 정해진 방법에 따라 수행했을 뿐인 점, 재택위탁집배원의 우편물 배달업무 방식은 근로자인 상시위탁집배원·특수지위탁집배원과 동일한 점, 재택위탁집배원에 대한 계약해지 사유는 실질적으로는 징계해고와 유사한 점 등을 종합하면 재택위탁집배원인 원고들을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를 위해 배달업무를 수행했다고 인정되므로, 원고들은 피고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의 근로자로 봄이 상당하다”라며 재택위탁집배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피고가 원고들의 노동자지위를 부정하며 행한 주장들과 관련해서는 “원고들이 상시위탁집배원보다 업무량이 적고, 도보로 이동하며, 배달업무의 난이도가 낮은 사실, 수집업무나 등기생성업무·마감업무 등을 수행하지 않는 사실, 채용자격을 달리 한 사실은 인정되나, 이와 같은 사정은 담당업무 등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는 것으로 특수지위탁집배원의 경우와 같이 임금액에 차이를 둘 사정이 될 수 있을 뿐 원고들의 근로자성까지 부정할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 주장들을 배척했다.

3. 대상판결의 의의

위 판결은 새로운 내용의 판결은 아니다. 다만 피고측이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주되게 주장한 내용인 원고들이 우체국으로 출퇴근하지 않는다는 사정이나,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상시위탁집배원 등과 그 업무내용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정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는 임금차등의 사유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자성을 부정할 사유가 될 수는 없다는 부분을 명백히 했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의의가 있다.

위 판결에서 법원은 배달업무를 하는 동안 피고로부터 어떠한 지휘·감독도 받지 않는다는 취지의 피고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재택위탁집배원들 역시 정규직집배원 등과 동일하게 문자 등을 통한 업무지시를 받았으며, 배달하는 동안 직접적인 지휘·감독이 없어도 피고가 정해 놓은 방법에 따라 배달해야 하며, 변경된 업무지침이나 주의사항은 담당집배원을 통해 전달받았다는 점을 고려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인정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집배원들이 자신의 담당집배구를 지정받고, 근무시간 내내 해당 집배구에서의 외근을 통해 배달업무를 수행한다는 외근업무의 특성과 미리 피고가 정해 놓은 배달방식을 숙지하고 그에 따라 기계적으로 우편배달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집배업무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점점 취업·고용형태가 다양화 되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근무장소와 다양한 방식의 근무시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것으로서 지극히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에 더해 대상 판결은 지난 20여년간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위한 근로조건의 최저기준들을 정한 법들(근로기준법 등)조차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면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재택위탁집배원들의 노동자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특히 공공부문의 민간위탁사업이 점점 증가하며 그 과정에서 사실상의 ‘위장도급’을 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 판결은 십수년 전부터 정부(우정사업본부) 주도로 이뤄진 사실상의 위장도급사안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환영할 만하다. 다만 현재 위 사건은 대한민국(우정사업본부)측에 의해 항소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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